한국과 콜롬비아 경기 본 뒤 '손흥민' 탐내는 일본 누리꾼들
한국과 콜롬비아 경기 본 뒤 '손흥민' 탐내는 일본 누리꾼들
2017.11.11 16:09

인사이트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한국과 콜롬비아의 경기를 지켜본 일본 누리꾼들이 "손흥민 같은 에이스를 갖고 싶다"며 부러움을 드러냈다.


지난 10일 한국 축구 대표팀은 수원월드컵경기장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손흥민의 2골을 앞세워 2-1 완승을 거뒀다.


그리고 손흥민은 이날 전반 11분과 후반 16분 연속 골을 넣으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또 골 장면 외에도 경기에 큰 영향력을 끼치며 하메스 로드리게스와의 '에이스 대결'에서도 압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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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종횡무진 활약하는 손흥민의 모습을 본 일본 누리꾼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후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에는 손흥민의 실력을 찬양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실제로 한 일본 누리꾼은 "일본도 이런 세계적인 수준의 에이스가 있으면 한다"며 부러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누리꾼들 역시 "역시 손흥민은 어디 있어도 손흥민이다", "이것이 카가와와 손흥민의 차이", "손흥민이 빛났다" 등 손흥민의 활약을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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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손흥민은 이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늘 두 골을 넣었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아직 숙제가 많이 남았는데,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줬다"라면서 "오늘 득점은 동료들과 다 같이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손흥민 멀티골' 신태용호 한국 대표팀, 콜롬비아에 2-1 값진 '첫 승리'축구 국가대표팀 친선 평가전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콜롬비아를 꺾고 승리했다.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

"50년 전 오늘, 강원도 산골 마을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이 퍼져나왔다"
입력 2018.12.09 10:23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68년 10월 강원도 울진과 삼척 지역에 북한 무장간첩 120명이 침투했다. 


대부분 간첩은 군인과 경찰에 의해 소탕됐지만, 목숨을 건진 일부 간첩은 이곳을 빠져나와 북으로 도주했다. 


1968년 12월 9일, 그중 5명이 강원도 평창의 한 시골 마을 초가집에 나타났다. 


여섯 식구가 살고 있던 이 초가집에서 간첩들은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10세) 이승복에게 물었다. 


"남조선이 좋으냐, 북조선이 좋으냐?"


이에 이승복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의 대답에 격분한 무장간첩들은 그의 입을 칼로 찢어 살해했다. 


이후 발견된 이승복의 시신은 처참했다.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찢어져 있었고, 귀와 뺨 주변에는 'X자' 형태의 상처가 선명했다. 


이승복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집에 있던 일가족 4명이 무참히 살해됐다. 


이승복의 형이었던 이학관(당시 16세)은 흉기로 36곳을 찔렸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이웃집 이사를 돕다가 돌아와 간첩의 칼에 찔리고 도망간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일가족이 처참히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후 아버지와 할머니는 결국 정신 질환으로 평생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한때 이승복이 실제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사건을 보도했던 조선일보가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오랜 시간 공방이 이어진 끝에 대법원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에 정확한 근거가 없지만 살아남은 형 이학관의 증언에 충분한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판결했다. 


이승복이 당시 상황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했고, 이것이 이승복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었다. 


한편 과거 남북의 대립이 심했을 때 이승복의 이야기는 반공의 상징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고, 대다수 초등학교에는 이승복의 동상이 건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 이후 교과서에서 이승복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고, 현재 이승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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