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던 여중생에게 '기습 뽀뽀'하며 성추행한 40대 남성
학교 가던 여중생에게 '기습 뽀뽀'하며 성추행한 40대 남성
2017.11.08 21:28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좌) 연합뉴스, (우)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등교 중이던 여중생에게 갑자기 입맞춤한 남성이 죗값을 치르게 됐다.


지난 8일 전주지법 형사2부는 여학생에게 갑자기 입맞춤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A(46)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한 신상정보 3년간 공개와 위치추적 전자장치 5년간 부착도 명령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A씨는 지난해 9월 23일 오전 8시경 전주 시내에 있는 한 음식점 주차장에서 여중생(13)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그동안 지켜봤다. 마음에 든다. 오빠와 동생 사이로 지내자"라면서 여중생에게 입을 맞췄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2001년 강제추행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과가 있는 성범죄 전과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추행 정도가 약하지만 나이 어린 피해자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동종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라고 판시했다.


같은 학교 여고생 제자 '50명' 넘게 성추행한 선생님들자신이 가르치는 여고생 제자 50여 명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해온 선생님 두 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

"50년 전 오늘, 강원도 산골 마을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이 퍼져나왔다"
입력 2018.12.09 10:23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68년 10월 강원도 울진과 삼척 지역에 북한 무장간첩 120명이 침투했다. 


대부분 간첩은 군인과 경찰에 의해 소탕됐지만, 목숨을 건진 일부 간첩은 이곳을 빠져나와 북으로 도주했다. 


1968년 12월 9일, 그중 5명이 강원도 평창의 한 시골 마을 초가집에 나타났다. 


여섯 식구가 살고 있던 이 초가집에서 간첩들은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10세) 이승복에게 물었다. 


"남조선이 좋으냐, 북조선이 좋으냐?"


이에 이승복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의 대답에 격분한 무장간첩들은 그의 입을 칼로 찢어 살해했다. 


이후 발견된 이승복의 시신은 처참했다.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찢어져 있었고, 귀와 뺨 주변에는 'X자' 형태의 상처가 선명했다. 


이승복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집에 있던 일가족 4명이 무참히 살해됐다. 


이승복의 형이었던 이학관(당시 16세)은 흉기로 36곳을 찔렸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이웃집 이사를 돕다가 돌아와 간첩의 칼에 찔리고 도망간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일가족이 처참히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후 아버지와 할머니는 결국 정신 질환으로 평생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한때 이승복이 실제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사건을 보도했던 조선일보가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오랜 시간 공방이 이어진 끝에 대법원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에 정확한 근거가 없지만 살아남은 형 이학관의 증언에 충분한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판결했다. 


이승복이 당시 상황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했고, 이것이 이승복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었다. 


한편 과거 남북의 대립이 심했을 때 이승복의 이야기는 반공의 상징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고, 대다수 초등학교에는 이승복의 동상이 건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 이후 교과서에서 이승복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고, 현재 이승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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