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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대신 '5개국어' 섞어서 말하는 1948년 여고생들의 흔한 말투

73년 전의 청소년들도 오늘날처럼 일본어와 영어가 섞인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는 내용이 누리꾼들의 주목을 받았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SNL KOREA'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급식체'가 유행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재미있게 섞은 '한본어'를 쓰는 청소년들도 많다. 


예를 들면, '오이오이'(누군가를 부를 때 '어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야레야레'(실망이나 피로감을 표현할 때 쓰는 일본어) 등이다. 


일부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이러한 언어생활이 '언어 파괴' 현상이라고 지적하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청소년들은 이런 언어를 즐겨 써왔다. 당신이 할머니·할아버지도 말이다. 


학술지 '민족문학사연구'에 실린 김윤진의 '해방기 엄흥섭의 언어인식과 공동체 구상'이란 논문에는 일제강점기 '파산선고', '출범전야' 등을 저술한 소설가 엄흥섭이 길거리에서 들었던 고등학생들의 대화 내용이 실려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KBS2 '란제리 소녀시대'


"얘, 정숙인 이번 니찌요비 겟곤 한다는데 아주 스바라시이 헌옷감이만트라"


"정숙이가 아바다인데도 신랑이 오케 했다지?


"신랑이 호레루 한 게 아니라 정숙이가 호레루 했데


"나루호도 새로운 뉴슨데?"


이 대화에서 '니찌요비'는 일요일, '겟곤'은 결혼, '스바라시이'는 놀라운, '아바다'는 곰보, '호레루'는 반하다, '나루호도'는 과연이란 뜻을 가진 일본어다. 


여기에 오케(OK), 뉴스(News)라는 영어까지 섞여 있다. 


다음 대화에서도 이러한 외래어 사용은 마찬가지다. 


"어이 기미기미 가께우동 한턱내라"


"이 자식아 해부노다"


"나두, 짱기네-트다"


"얘, 너 곤사이스 에이와지덴 후루혼야에가 팔아서 젠사이 사 먹자"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MBC '놀면 뭐하니?'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대화 속 내용을 우리말로 바꾸면 "어이 너너 가케우동 한턱 내라" 이 자식아 '해브 노'(Have No)다", "나도 쨍기네-트(деньги нет, 돈이 없음)다"로 바꿔볼 수 있다. 


'곤사이스 에이와지덴'는 콘사이스 영일사전을, '후루혼야'는 헌책방을, '젠사이'는 단팥죽을 의미한다. 


일본어와 한자, 그리고 영어와 러시아어까지 함께 사용된 이 대화를 보고 엄흥섭은 학생들의 언어생활의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여기까지 보면 오늘날 '한본어'나 '급식체'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용했던 말들이 더욱 '언어 파괴'에 가까워 보인다. 엄흥섭의 지적도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인사이트해방 직후 조선총독부 건물에 걸린 미국 성조기 / 우리역사넷 홈페이지


그러나 당시가 해방 직후인 1948년이라는 상황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주둔한 직후다. 


이들의 대화는 당시 한국의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요즘 10대 청소년들의 대화도 이와 다를 바 없이 현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의 소통은 글로 하는 소통, 문자 언어 사용량이 줄어든 대신 컴퓨터와 온라인,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이 늘어났다. 


이러한 사용 환경을 고려한다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몇몇은 청소년들의 이러한 언어 생활을 두고 '사회화가 덜 됐다', '폭력적인 대중매체에 너무 노출된 탓이다'라며 교육을 통한 교정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의 언어 문화를 잘못된 문화로 보는 것이다. 


이들의 언어가 그 사회를 담고 있다고 볼 때 교정한다고 욕심을 부리기 보다 좀 더 유연한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조건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