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 서울
  • 15 15℃ 인천
  • 13 13℃ 춘천
  • 10 10℃ 강릉
  • 15 15℃ 수원
  • 17 17℃ 청주
  • 17 17℃ 대전
  • 13 13℃ 전주
  • 17 17℃ 광주
  • 16 16℃ 대구
  • 15 15℃ 부산
  • 16 16℃ 제주

"친구가 '알코올 중독'으로 죽어가던 저를 살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을 누르며 애써 무덤덤하게 쓴듯한 그의 글은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왔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


대학교 4학년 때 인턴 모두 떨어지고, 상반기 공채도 넣은 곳마다 서류 탈락, 면접 탈락으로 마무리 지었던 나는 집 앞 편의점 알바를 하며 1년을 보냈다.


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나는 어떤 것을 하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매일 전날의 숙취로 피곤함만 가득 찬 채로 한참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한 사람을 만났다.


"술을 자주 마시나 봐요"


말을 건넨 그 사람은 풍채도 훌륭했고 키도 나보다 컸다. 그에게는 멘솔 냄새가 났다.


무슨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포커를 하자고 제안했다. 만약 자기가 이기면 당장 내일 헬스장을 가자고 했다.


나는 게임에서 져버렸고 그 친구와 함께 헬스장을 갔다.


하루하루 그 친구는 나를 챙겨줬다. 고마운 마음 반, 그만하고 싶고 귀찮고 짜증 나는 마음 반, 복에 겨운 관심이었지만 나는 그 덕분에 술 없이 1년을 지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월요일에 죽었다. 걷다가 교통사고로 그냥 죽어버렸다. 나는 살려놓고 그냥 죽었다.


상갓집에서 며칠을 샜다. 나도 죽은 느낌이다. 보답도 하기 전인데 그렇게 참 빨리 가버렸다.


-지난 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A씨의 글 '알코올 중독에서 내 인생을 구한 이야기'를 각색한 것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영화 '바람'


[인사이트] 조세진 기자 = 포커 게임에서 진 그날부터 A씨의 삶은 변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나아가 지원한 회사 서류 전형을 통과해 면접도 봤다. 


곧 취업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던 그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A씨에게 먼저 다가와 포커 게임을 제안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었다. 친구는 고마운 마음을 전할 틈도 주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술을 끊었던 A씨는 1년 만에 술 잔을 들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tvN '남자친구'


A씨는 "친구가 (술을 마신 사실을 알게 되면) 욕할 것 같다. 그런데도 진짜 못 버티겠기에 술을 이렇게 먹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에게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정말 고맙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무야호 드립이나 실컷 봐라 인마. 내가 더 열심히 살고 너네 엄마 틈틈이 뵐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 있어. 진짜 고마워"


마음을 누르며 애써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그의 글은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왔다.


사연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제발 소설이었으면 좋겠을 이야기다", "무슨 말을 해도 위안이 되진 않겠지만 슬픈 거 다 쏟아낼 때 쏟아내고 다시 기운 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네가 그 친구를 보고 달라진 것처럼 앞으로 네 인생을 보고 달라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위로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