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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종교 아닌 '개인적 신념'에 의한 예비군 훈련 거부 최초 인정

'폭력과 살인 거부' 등의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역동원소집에 불참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인사이트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 입소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 뉴스1


[뉴스1] 윤수희 기자, 이세현 기자 ='폭력과 살인 거부' 등의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역동원소집에 불참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적 신념이 아닌 비종교적 신념도 '양심적 병역거부'로서 허용된다고 본 대법원 첫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6년 3월14일부터 2018년 4월16일까지 16차례 예비군훈련소집 통지서를 전달받고도 훈련에 불참하고, 병력동원 훈련을 받으라는 통지서를 받고 훈련에 불참했다가 예비군법 및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인사이트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 입소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 뉴스1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A씨는 재판과정에서 "폭력적인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해 어렸을때부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됐고,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살인을 거부하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며 "입대 전 어머니와 친지들의 간곡한 설득과 전과자가 되어 불효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일수 있다는 생각에 입대했지만 이후 반성하며 양심을 속이지 않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는 예비군 훈련불참등으로 수년간 수십회에 걸쳐 조사를 받고 총 14회에 걸쳐 고발되고 기소돼 재판을 받아,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신념을 형성하게 된 과정, 입대 및 군사훈련을 거부하게 된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경제적 손실과 형벌의 위험 등을 감수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해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A씨의 훈련 거부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라고 볼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2심도 "A씨가 병역거부 중 가장 부담이 큰 현역 복무를 이미 마쳤는데도 예비군 훈련만을 거부하기 위해 수년간의 불이익을 모두 감수하고 있는 점, 유죄로 판단될 경우 예비군 훈련을 면할 수 있도록 중한 징역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점 등을 보면 A씨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다는 사실이 결과적으로 소명된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또 "A씨가 최근까지 '오버워치'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의 게임을 했으나 이러한 게임은 실제 전쟁이나 살인을 묘사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자신의 양심과 반하지 않았는다고 진술했다"며 "위 게임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A씨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대법원도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하는 것이 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며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경우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 제1호는 "예비군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아니한 사람"에 대해, 병역법 제90조 제1항 제1호는 "병력동원훈련소집 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일시에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점검에 참석하지 아니한 사람"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인사이트 / 사진=인사이트=인사이트


대법원은 해당 법 규정들은 "국민의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고,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도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이라는 점에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에 따라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병역법 제88조는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즉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것이 아닌 '진정한 양심'에 따라 예비군훈련과 병역동원훈련을 거부한 A씨의 경우에도 현역입영 시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피고인이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사안에서 진정한 양심에 따라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것으로 보아 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