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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하다 일본군에 붙잡힌 '백정기 의사'의 체포 당시 눈빛

거사 실패 직후 일본군에 체포된 백정기 의사의 형형한 눈빛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사이트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나의 구국 일념은 첫째, 강도 일제(日帝)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는 전 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평화 위에 세계 일가(一家)의 인류공존을 이룩함이니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


1933년 3월 17일 중국 침략의 주범 중 하나인 주중 일본공사 처형에 나서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름은 백정기. 훗날 윤봉길, 이봉창과 함께 '3의사'로 꼽히는 이가 된다.


백정기 의사는 그날 중국 상하이 음식점 육삼정에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처치하려다 일제 헌병에 체포됐다.


인사이트국사편찬위원회


당시 백정기 의사도 도시락 폭탄, 권총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밀정 탓에 백 의사는 투척도 하지 못했다.


체포된 뒤에도 백 의사는 일제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당한 눈빛으로 맞섰다. 체포 이후 찍힌 그의 사진에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강한 아우라가 흘러나온다.


사진에서도 그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는데 실제로는 오죽했을까 싶다.


인사이트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


백 의사는 이후 일본 장기로 압송됐으며 장기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934년 6월 5일 천추의 한을 가슴에 품고 옥중에서 순국했다. 그의 나이 향년 39세였다.


그는 유언을 남기면서도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생각했다. 그의 유언은 이러했다.


인사이트KBS '8.15 광복특집-기억의 재구성'


"나는 몇 달 더 못 살 것 같소. 그러나 동지들은 서러워 마오. 내가 죽어도 사상은 죽지 않을 것이며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이오.


형들은 자중자애하며 출옥한 후 조국의 자주독립과 겨레의 영예를 위해서 지금 가진 그 의지 그 심경으로 매진하기를 바라오.


평생 죄송스럽고 한 되는 것은 노모에 대한 불효가 막심하다는 것이 잊히지 않을 뿐이고,


조국의 자주독립이 오거든 나의 유골을 동지들의 손으로 가져다가 해방된 조국 땅 어디라도 좋으니 묻어주고, 무궁화꽃 한 송이를 무덤 위에 놓아주기 바라오."


백 의사는 조국 광복 1년 만인 1946년 7월 6일 이봉창, 윤봉길 두 의사의 유해와 함께 조국에 봉환돼 국민장으로 치러진 뒤 효창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