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의대 졸업하고도 의사 대신 아프리카서 '의료 봉사' 자처했던 故 이태석 신부
의대 졸업하고도 의사 대신 아프리카서 '의료 봉사' 자처했던 故 이태석 신부

인사이트영화 '울지마 톤즈2: 슈크란 바바'


[인사이트] 박상우 기자 = 살아생전 봉사를 목숨처럼 여기며 남수단 톤즈의 아이들을 보살폈던 故 이태석 신부. 이 신부는 10년 전 48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이 신부의 발자취를 담은 영화 '부활'이 개봉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가 다시 높아졌고, 그를 기리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 올라왔다.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진학에 성공했고, 의사 면허 취득 후에는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그는 군 복무를 하며 신부에 대한 꿈을 가졌다.


인사이트영화 '울지마 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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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울지마 톤즈2: 슈크란 바바'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제대와 동시에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 신부는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해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이 신부는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남다른 신앙심과 덕행을 보였다. 이후 2001년 6월 24일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고 비로소 신부가 됐다.


신부가 된 그는 곧장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갔다. 이후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는 남수단 '톤즈'로 이동해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의료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톤즈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손수 병원을 만들었다. 또 한센병 환자와 결핵 환자를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인사이트YouTube 'KBS News'


인사이트영화 '울지마 톤즈'


이 밖에도 학교와 기숙사를 짓기도 했으며 아이들에게 수학과 악기 등을 가르쳤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밤잠 설쳐가며 교본을 공부했다.


그러던 그에게 2008년 10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을 잠시 방문한 이 신부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 신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톤즈의 아이들만 생각했다. 당시 담당 의사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암 선고를 받고도 "톤즈에서 우물을 파다 왔다"라며 "마저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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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뉴시스


당장 본인의 건강보다 사후 이어가지 못할 봉사활동의 걱정이 더 컸던 것이다. 이후 이 신부는 투병하면서도 자선공연과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그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한 그는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Everything is good"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대륙과 인종을 뛰어넘은 사랑을 보여줬던 이태석 신부. 톤즈의 주민들에게 그는 여전히 의사이자 선생님, 지휘자 그리고 최고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영화 '부활'에는 수단과 에피오티아 등에서 기자, 의사, 약사,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이 신부의 제자 70여명의 모습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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