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성폭행범과 강제 결혼까지 해야했던 일본 역사 속 충격적인 성 문화 4가지
성폭행범과 강제 결혼까지 해야했던 일본 역사 속 충격적인 성 문화 4가지

인사이트1770년경 스즈키 하루노부 작 설월화 중 화(花) / 호놀롤루 미술관 소장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일본은 이른바 '성진국'으로 불릴 만큼 성에 대해서 매우 개방적인 나라다.


일본 역사에서도 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유교 사상이 주를 이뤘던 우리나라의 역사와는 매우 대조적인데 일부 풍습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일본 역사 속 충격적인 성문화 3가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어쩌면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1. 우타가키(歌垣)


인사이트우타가키를 재연한 모습 / 나라현 관광국 홈페이지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일본 고대에 존재했던 집단 맞선 축제다.


현재 일본 이바라키 현의 쓰쿠바산, 효고현의 우타가키 산, 사가현의 기시마 산이 대표적인 우타가키 장소로 여겨진다. 


우타가키는 젊은 남녀들이 즐기는 축제로 봄과 가을 특정한 시일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행사다. 


그러다가 밤이 찾아오면 낯선 상대와 성관계를 나눴다. 


이때 만나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오늘날 원나잇스탠드처럼 일회성 만남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2. 와카슈도(若衆道)


인사이트사무라이의 시중을 들고 있는 여장 미소년 / 히시카와 모로노부 作


일본에 존재했던 남창 문화다. 숙종 45년(1719년)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방문했던 신유한은 자신의 저서 해유록에 일본의 남창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본의) 남창은 요망스럽고 아리따움이 여자보다도 곱다. 그 풍속이 음탕하고 이에 빠지는 것이 여자보다 배나 더하였다"


"왕은 물론 귀족과 부자, 백성에 이르기까지 남창과 어울리지 않는 자가 없었고, 심지어 서로의 남창을 질투해 죽이는 자까지 있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당시 일본의 유교학자 아메노모리 효슈는 신유한에게 "당신도 남창을 하시오?"라고 물었고, 이에 신유한이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 좋은 걸 아직도 안 해보셨단 말씀이시오?"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와카슈도는 1946년에 발간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도 기록될 정도로 일본에서는 흔한 성문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요바이(夜這い)


인사이트열린 문 사이로 키스를 나누고 있는 남녀 /  스즈키 하루노부 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침실에 침입해 성교를 하고 나오는 요바이란 풍습도 있었다. 성폭행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요바이는 10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1000년간 크게 유행했다.


요바이는 남성이 성교를 목적으로 모르는 사람의 침실에 침입해 성관계를 갖는 풍습이다. 여성에게 거부권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요바이로 인해 아이가 생기면 여성은 잠자리를 함께한 남성 중 한 명을 아이의 아빠로 지명한다. 


동네마다 요바이가 행해지는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손님에게 아내를 내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요바이는 메이지 유신 이후 성관념과 성의식 전반에 대한 변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4. 마쿠라에(枕絵)


인사이트1788년 기타가와 우타마로 작 '찻집 위층방의 연인들' / 대영박물관 소장


마쿠라에는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혼수감으로 마련해주는 일종의 성관계 설명서라 할 수 있다. 


마쿠라에란 명칭 또한 배갯머리에서 보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아마 일본 역사 속 많은 신혼부부들이 이 마쿠라에를 보고 성관계를 배웠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설명서라 하기에는 그림이 매우 원색적이다. 남녀 성기의 모양은 물론 성관계 자세까지 그림으로 자세하게 표현했으며 그 옆에는 설명까지 달았다. 


마쿠라에 이외에도 17세기에 이르러 다양한 출판물이 성행했는데 유곽에 대한 설명을 담거나 유녀의 평판기를 담은 책들도 유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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