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한밤중 누군가 도어락 비번을 눌렀다. 다음날 CCTV 영상에는 원룸 주인만 있었다
한밤중 누군가 도어락 비번을 눌렀다. 다음날 CCTV 영상에는 원룸 주인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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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도어락'


[인사이트] 김다솜 기자 = '띠-띠띠-띠띠띠, 똑똑' 한밤중 누군가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주인집에 전화를 걸어 CCTV를 확인해달라 요청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아저씨가 확인해봤는데 그때 방문 앞에 지나간 사람이 없어~" 혼자 들었으면 착각이라 여겼을 수 있었겠지만, 친구와 함께 야식을 먹고 있던 터라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를 정확히 두 사람이 똑똑히 들었다.


"아저씨 그럼 저희가 직접 확인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충격에 충격을 더했다.


"지금 나 못 믿어서 그러는 거야? 의심하는 거냐고!!" 불같이 화를 내는 목소리에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고 큰소리에 주눅이 들었다. 잘못한 게 없지만, 어느새 잘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 영화 속에서만 봤던 이 일은 며칠 전 실제로 기자에게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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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 / Twitter 'you_know_twitte'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일이 최근 1인 가구를 대상으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수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긴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이 그 예다.


'주거침입' 혐의로 범인을 체포했던 경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주거침입 강간미수)'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도 같았다.


하지만 법원은 강간 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라 판단했다. 1, 2심 재판부는 "과거 성추행 전력이 있고, 강간 의도에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집 문이 열린 이후 어떤 행동을 했을지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대법원도 결국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법원은 연락처를 받으려고 그랬다는 남성의 해명이 궁색하다면서도 명백한 허위라 단정 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간 의도를 드러내는 언행이 없었다는 판단이다.


손바닥으로 현관문을 치고 닫힌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벨을 누르는, 도어록을 스마트폰 라이트로 비추고 몇 차례나 비밀번호를 누르는, 인터폰으로 떨어뜨린 물건이 있다며 문을 열라는 남성의 행위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단 몇 초만 늦게 문이 닫혔어도 무슨 일이 발생했을지 모르는데 미수에 그쳤고, 신체에 해를 가하는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인은 주거침입 혐의로만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지난달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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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주거침입 성범죄는 1,611건이나 발생했다.


주거침입 강제추행이 671건으로 10건 중 4건가량을 차지했고 주거침입 강간 또한 459건이나 됐다. 하루에 한 번꼴로 사건이 일어난 셈이다.


앞선 사건에서 사회 통념상 '강간 미수'로 보인다고 합리적 의심이 들기에 충분한 구체적 행위들이 포착됐다. 


일반 성범죄와 또 다른 주거침입 상황에서의 성범죄에 대해 미수가 인정될 만한 법의 해석 범위를 늘릴 필요가 있다. 또 강간 미수라고 판단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규정이 빠져있다면 보완해야 한다.


성범죄 미수에 대한 처벌 또한 약해서는 안 된다. 형량을 강화해 성범죄의 싹을 잘라야 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도어락'


성범죄 미수에도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또 다른 범죄를 막을 수 있다. 경찰과 검찰, 법원이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경고'를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세입자들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집주인, 원룸 관계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일반 성범죄보다 높은 처벌이 필요하다.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상하 특수관계와 언제든 방에 들어갈 수 있는 특수 상황, 주거침입 성범죄가 별다른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고려해 가중 처벌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에 이어 비슷한 사례는 또 한 번 이어졌다. 한 여성의 집을 몇 개월 동안 훔쳐본 남성을 처벌할 근거가 딱히 없다며 수사가 종결된 일이다.


이 사건 역시 가해 남성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직접 문을 열거나 강제로 힘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미국에서 일어날 경우 스토킹 범죄로서 강력하게 처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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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법 국가에서는 극도로 공포심을 느낄 만한, 성범죄 목적이 추정되는 스토킹의 경우 선처 없이 징역형이 선고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지난 1990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5년을 선고하는 스토킹 처벌법을 제정했으며 현재 50개 모든 주에 스토킹 처벌법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스토킹 방지법이 없어 피해자를 보호할 방법이라고 해봐야 경범죄처벌법에 따른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나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내는 정도다. 


또다시 스토킹을 시도하거나 보복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1999년부터 스토킹 처벌법 제정 논의가 이어졌지만, 아직까지도 만들어지지 않은 법안.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법원은 스토킹 등 주거침입 성범죄가 중범죄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아니 그 자체가 중범죄임을 인식하고 다른 나라의 예처럼 강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제2, 제3의 유사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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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을 덧붙이자면 기자는 그날 친구와 함께 주인집에 올라가 CCTV 영상을 직접 확인했다.


방문 앞에 지나간 사람이 없다던 CCTV 영상에는 주인아저씨의 모습만 담겨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 밤에 무슨 유난이냐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는 걱정보다는 짜증만 가득했다.


혼자 사는 여자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기자는 이 사건 이후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와 이사했다.


잘못한 게 없지만, 죄인이 된 것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지금도 이날을 떠올리면 비밀번호를 누르던 도어락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사를 왔지만 누군가가 집 문을 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그렇게 그 사건은 기자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