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40년 전 오늘, 5월 18일은 광주시민들이 군부의 '총칼'에 맞서 싸운 날입니다
40년 전 오늘, 5월 18일은 광주시민들이 군부의 '총칼'에 맞서 싸운 날입니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40년 전 오늘(5월 18일), 5천 명의 광주 시민은 전두환을 위시한 군부에 처참하게 희생당했습니다"


40년 전 1980년 5월 18일,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를 향한 저항이 광주에서 나타났다.


광주 시민은 '민주주의'를 깨뜨리는 전두환 신군부를 그냥 두고보지 못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며 저항을 시작했다.


전남대 학생들은 총칼로 위협하며 교문을 봉쇄한 공수부대 앞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그래도 나라를 지키는 군인인데, 총부리는 외부의 적에게 향해야 하는 군인이 자신들을 해치치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독기가 가득했다.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학생들을 잔인하게 구타했다.


광주 시민은 광기 어린 공수부대의 모습에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결국 광주 시민들은 민주화 시위에 자신들을 내던졌다.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변모한 것이다.


인사이트영화 '화려한휴가'


권력에 취한 전두환이 이끄는 계엄사령부는 광주 시민을 폭도라 규정했다. 북한에서 온 간첩이라 낙인까지 찍으며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조차 진압의 대상이 됐다. 존재 그 자체를 문제로 규정하고 곤봉과 대검을 이용해 잔악하게 폭행했다.


신군부의 잔인한 행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군부부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발포'했다.


인사이트영화 '화려한휴가'


전두환의 신군부는 광주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외부와 연결을 완전히 차단해 '고립된 도시'로 만들어버렸다.


얼마나 완벽히 차단했는지 다른 지역의 시민들은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TV 뉴스는 물론 신문이 완벽히 통제됐기 떄문이다.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전두환은 대통령이 됐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한편 발포는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명령을 했다고 추정하는 이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진행된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총 9일 간 광주에서 사망한 이는 약 3백명. 행방불명자와 부상자를 합치면 약 5천명이 죽거나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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