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민망한 이름 때문에 '놀림' 좀 받았을 것 같은 한국사 속 인물 7人
민망한 이름 때문에 '놀림' 좀 받았을 것 같은 한국사 속 인물 7人
입력 2019.12.02 18:08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KBS2 '대왕 세종'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듣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이름들이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개명 신청을 통해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개명 신청을 하는 인원이 연평균 1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주 옛날 우리 선조들은 어땠을까. 


지금과는 그 의미와 뜻이 다르기도 하지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민망한 이름을 가진 선조들이 있다. 


아마도 이들은 어릴 적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았을까. 우리 역사 속 민망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 7명을 소개한다. 


1. 고발기(高拔奇, ?~?)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KBS1 '대조영'


고구려 신대왕의 맏아들이자 고국천왕의 형이다.


아버지인 신대왕이 죽었을 때 불초하다는 이유로 동생 고국천왕에게 왕위를 빼앗겼고, 이에 원한을 품었던 고발기는 한나라로 도망가기에 이른다. 


이후 한나라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으나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동생 고국천왕에 의해 패배한다.


2. 박아달라(朴阿達羅, ? ~ 184)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KBS1 '근초고왕'


신라의 제 8대왕은 성이 박씨고 이름은 아달라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아달라 이사금은 키가 7척이나 되었으며 준수한 풍채와 뛰어난 용모를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왕위를 계승할 적자가 없어 신라의 제4대 임금이었던 탈해이사금의 손자 벌휴 이사금이 재위를 이었다. 


3. 왕자지(王字之, 1066~1122)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KBS2 '천추태후'


고려시대 내시이자 무관으로 윤관과 함께 여진족을 몰아내고 북방 영토를 개척한 인물이다. 


보통 내시라고 하면 거세당한 환관을 떠올리기 쉬운데 고려시대 내시는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에 합격한 엘리트 비서관이었고 거세를 당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왕자지는 휘하에 1남 1녀를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4. 신보지(申寶至, ?~1196)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MBC '무신'


고려 중기에 활동했던 장군이다. 명종 때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만춘절을 축하하고 돌아와 어사중승에 올랐다. 


어사중승은 관리를 감찰하고 풍기를 단속하던 고려시대 기관 어사대에 속한 종4품 관직이다. 


말년에는 왕의 고문 역할을 하던 수사공좌복야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5. 김자지(金自知, 1367년 ~ 1435년)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해치'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했던 관리로, 음양, 천문, 지리, 의약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이다. 


조선 세종 대왕 때까지 관리로 활동했으며 형조 판서를 역임하기도 했다. 


동생의 이름은 여지로 두 사람 이름의 뜻은 '나를 알고(自知) 너를 안다(汝知)'는 의미가 된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9명의 아들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이시발(李時發, 1569~1626)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육룡이나르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를 정탐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이후 이몽학의 난, 정유재란 등에서 공을 세워 선조 37년에 형조참판에 올랐다. 


7. 남근(南瑾, 1556~1635)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KBS2 '추노'


이시발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남근은 조선 중기의 문관으로 1586년 과거에서 장원 급제한 인물이다. 


남근은 성격이 포악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사헌부 탄핵에 의하면 살해한 백성의 수가 14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말년에는 인조반정으로 삭탈관직당하고 유배에 갔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