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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유서 남기고 '북한 침투' 명령만 기다리던 수색대대 출신 예비역의 실제 경험담

지난 2015년 8월 서부 전선에서 발생한 북한의 포격 도발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한 예비역의 경험담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남북이 대치한 지 어언 70여 년,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군사적 긴장감은 반 백 년이 지난 세월에도 사그라들 줄 모른다. 


지난 2015년 8월 4일 비무장지대에서 부사관 2명이 북한의 목함지뢰를 밟고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한은 북한의 소행이라며 대북 방송을 했고, 8월 20일 북한은 남한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우리 군 역시 북쪽을 향해 29발의 포격을 하면서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장병들은 말한다. "진짜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고.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당시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한 한 예비역 장병 A씨의 글이 공개됐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조선중앙통신


A씨에 따르면 당시 남북이 포격을 주고받은 후에도 우리 군의 강경 대응은 계속 이어졌다.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을 지속한 것이다. 


이에 북한은 48시간 내에 확성기 철거를 안 하면 군사 행동에 나서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북한이 말한 48시간이 거의 도달한 시점, A씨가 복무하고 있던 부대 대대장은 장병들을 모두 연병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전원 군장을 싸되 전쟁이 일어난 후에도 정말 필요한 것들만 챙기라는 말이 이어졌다. 


당시 수색대대에서 분대장으로 복무 중이었던 A씨는 속옷과 탄알집, 수류탄, 위장크림, 야삽, 판초 우의 등과 함께 가족사진 한 장을 군장 안에 넣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군장을 다 싼 후에는 흰 종이와 함께 봉투를 나눠줬다. 유서를 쓰고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과 함께 봉투에 넣으라는 뜻이었다. 


분대장이었던 A씨는 유서를 작성한 후 팀원들과 앉아서 침투로를 확인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러자 부분대장이 "저 앞 오성산에 태극기는 우리 팀이 꽂아 넣자"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오성산은 김일성이 "국군 장교 한 트럭을 가져다줘도 못 바꾼다"는 소문이 있던 전력적 요충지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침투 명령을 기다리다가 잠시 화장실에 갔던 A씨는 장병들이 화장실 문에 썼던 낙서 또한 잊지 못하는 듯했다. 


'우리는 북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군은 절대 북괴군에게 질 수 없다'는 문구와 함께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그의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그는 막사 안의 태극기를 떼서 자신의 돌격 배낭에 접어 넣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훈시를 하는 대대장은 "이제 사단에서 명령만 내려오면 너희들은 바로 오성산으로 침투해야 한다. 지금껏 해왔듯이 잘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말에 눈물을 흘렸던 A씨.


당시 남북 간의 협상으로 사태는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A씨는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며 "북괴는 적이 맞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과연 A씨뿐이었을까. 2015년은 물론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에도 우리 장병들은 즉각 전투 대비 태세를 갖추고 북의 도발에 맞설 준비를 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게 군인의 숙명이지만, A씨를 비롯해 많은 장병들을 전선에 둔 가족들은 오늘도 걱정과 안타까움에 사로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