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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윤봉길 의사가 물통 폭탄 던지기 전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의거 당시 24살이었던 윤봉길 의사는 자신이 목숨을 잃을 후 남겨질 두 아들을 위해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인사이트윤봉길 의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스물넷, 한창 아름다운 꿈을 꿀 나이.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오늘 내린 한 줌의 햇볕에 미소 지을 나이지만 청년 윤봉길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 


스물넷의 그는 '폭탄'을 쥐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펼쳐진 일왕의 생일 행사에서 폭탄을 던졌다. 


그의 폭탄으로 시라카와 요시노리 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가와바타 사다츠구 상하이 일본 거류민 단장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일본군 주요 인사가 큰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윤 의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의거와 죽음 모든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인사이트당시의 훙커우 의거 현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거사에 앞서 윤 의사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다. 폭탄과 거사 계획은 물론이거니와 소중했던 어린 두 아들과도 작별의 인사를 나눠야 했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세상과 이별하는 아버지의 심정이야말로 이뤄 표현치 못하겠지만 윤 의사가 남긴 편지에는 슬픔이 묻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대한의 용감한 투사가 되라며 피와 살을 희생하라고 독려했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인사이트의거 후 연행되는 윤봉길 의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러면서 "너희는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라며 어머니 밑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전 세계의 위인을 열거했다.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프랑스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인사이트윤봉길 의사 유서(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그렇게 스물넷의 아버지는 희망찬 편지를 남기고 용감한 죽음을 택했다.


스물넷 당신이 오늘의 햇볕 한 줌에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은 편지 속 아버지와 아들 때문이지 않을까.


윤 의사의 이 편지가 오늘날 윤봉길 의사 유품에 함께 묶여 대한민국 보물 568호로 지정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