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 서울
  • 10 10℃ 인천
  • 10 10℃ 춘천
  • 10 10℃ 강릉
  • 10 10℃ 수원
  • 8 8℃ 청주
  • 8 8℃ 대전
  • 9 9℃ 전주
  • 9 9℃ 광주
  • 8 8℃ 대구
  • 12 12℃ 부산
  • 14 14℃ 제주

"경비원 아버지가 고장 난 승강기 지하 3층으로 추락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비원이 고객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기계식 주차장을 점검하러 갔다가 추락 사고로 숨졌으나 관련자 모두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인사이트A씨 제공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한 오피스텔 기계식 주차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답답함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8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아직도 해결된 건 하나도 없는 탓이었다.


사고는 지난해 11월 8일 오후 7시에 일어났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던 그날 서울 금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던 고(故) 박영태씨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었다. 


그때 박씨가 근무하고 있는 건물 사우나를 이용한 고객이 급하게 경비원을 찾았다. 그는 기계식 주차장이 고장 났다며 "빨리 차량을 뺄 수 있게 해달라"라고 독촉했다. 


박씨는 A/S 기사를 불렀지만 A/S 기사는 폭우 탓에 차가 밀린다고 말했다. 결국 박씨는 익어가는 라면을 뒤로하고 동료 김씨와 함께 고장 난 기계식 주차장으로 향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박씨는 A/S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들은 뒤 김씨와 함께 바닥이 깊은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승강기를 점검했다. 


점검을 마치고 나올 때 사고가 났다. 김씨 뒤를 따라 승강기 밖으로 나가다가 닫히는 문에 머리를 부딪쳐 지하 3층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아버지의 사고 소식은 바로 아들 A씨에게 전해졌다. A씨는 그길로 아버지를 향해 차를 몰았으나 폭우 탓에 꽉 막힌 올림픽 대로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결국 박씨는 물을 부어 놓았던 컵라면을 먹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아들 A씨는 병원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아버지를 마주해야 했다.


인사이트박씨와 A/S 기사 통화 내역 / A씨 제공


박씨가 숨지고 사고 책임에 대한 공방이 이어졌다. 박씨가 승강기 안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함께 승강기 안으로 들어간 김씨는 "A/S 기사가 친절하게 들어가는 방법을 모두 알려줬다"라고 진술했다. 


차가 밀려 A/S 기사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씨가 승강기 안에 들어가는 방법을 물었고 A/S 기사는 이를 친절하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A씨에 따르면 박씨는 승강기 계기판 사진을 찍어 보내 A/S 기사의 설명을 요청하기도 했다.


박씨 핸드폰에 문자로 와 있던 승강기 계기판 사진을 인사이트에 제공한 A씨는 "계기판 조작을 위해서는 승강기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A/S 기사는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는 경찰 수사에서 "주차장 내부에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박씨가 들어갔다"라고 진술했다. 


유족 측과 A/S 기사 사이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경찰은 승강기 업체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고 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A씨


경찰은 A/S 기사 대신 오피스텔 관리소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이 경비원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유족 측은 "고장 상황에 경비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뉴얼은 없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형사 입건된 관리소장은 인사이트와의 통화에서 "승강기가 고장 나도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교육했으며 이외에 따로 조치할 수 있는 사항이 없다"라고 전했다. 


오피스텔 관리업체는 유족 측에 도의적 책임이라며 합의금 3,500만원을 제시했지만 A씨는 금액은 물론 이유조차도 분명치 않은 합의금이라며 거절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현재 유족들은 정신적 충격에 힘들어하고 있다. A씨는 "평소 강인했던 동생은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인사이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원인과 책임만은 제대로 밝히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11일 열린 첫 번째 공판에서 관리소장은 "관리 소홀에 주의 의무를 다했다"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오는 8월 13일 검찰은 김씨와 A/S 기사를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