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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1일)은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이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순국하신 날입니다"

올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동시에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순국 83주년이기도 하다.

인사이트(좌) 단재 신채호, (우) 이순신전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올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동시에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순국 83주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으나, 단지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할 뿐 그가 잃어버린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1880년 11월 충남 대덕(현재 대전시 대덕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10살에 시를 짓고 13살에는 사서삼경을 독파할 정도였다.


그런 그의 앞에 놓인 미래는 일본에 빼앗긴 나라였다. 단재는 관직을 향한 꿈을 포기하고, 일제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인사이트이태리건국삼걸전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주필로 활동했던 그는 '이태리건국삼걸전',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등의 소설을 집필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하나같이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시기에 활약했던 영웅들이었다. 


단재는 이 소설을 통해 일제의 침탈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힌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하고, 우리 땅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자주 의식을 고취시켰다. 


특히 만주가 본래 우리 땅임을, 발해가 우리나라가 세운 나라임을 강조하며 당시 역사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인사이트뉴스1


1920년대부터는 민족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첫 번째 목적은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이었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단재가 세수를 할 때 일본인이 지나가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는 일, 고기를 먹다가 일본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토해버렸다는 등의 이야기다. 


다소 과장됐지만 단재의 올곧은 정신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이다. 단재는 이러한 정신으로 임시정부와 의열단을 통해 독립운동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도 '조선상고사', '평양패수고' 등 역사 저술을 편찬하며 연구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사이트뉴스1


그러다 1929년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등의 혐의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 감옥에 수감됐다. 


그곳에서도 역사 저술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결국 뇌일혈(뇌출혈), 동상, 영양실조, 고문 후유증 등으로 83년 전 오늘인 1936년 2월 21일 감방 안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57세였다. 

 

단재의 아들 신수범씨는 "화기라고는 조금도 없고 시멘트 바닥에 다다미 몇 장, 홑이불 정도밖에 안 되는 얄팍한 이부자리 속에 아버지가 누워계셨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도 평생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