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일본 천황폐하의 생일 축하하라'는 말에 목숨 걸고 거절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일본 천황폐하의 생일 축하하라'는 말에 목숨 걸고 거절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입력 2019.02.15 15:11

인사이트뉴스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10년 전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약자를 감싸 안고 모두를 위해 살았던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말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1922년 대구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수환 추기경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인사이트김수환 추기경 추모사이트


한창 일제의 탄압이 있던 1940년, 동성 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수환 추기경은 '천황폐하의 생신을 맞이하여 황국 신민으로써 소감을 적어라'는 윤리시험 문제에 당돌하게도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그러므로 소감이 없음'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당시 교장이었던 장면(전 국무총리)은 화를 내며 김 추기경의 따귀를 내려쳤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일본 경찰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우려해 보여주기식으로 '쇼'를 하며 보호한 것이다.


후에 장면은 김수환 추기경이 일본으로 유학 갈 때 추천서를 써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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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수환 추기경은 도쿄의 조치 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당시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


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차별하지 않던 독일인 신부가 있었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경험은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


일제강점 말기 학도병으로 징집돼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한 김수환 추기경은 해방 이후 본격적인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침내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의 임명으로 한국 최초이자 전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되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나이는 47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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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1971년 생방송으로 중계된 성탄절 미사에서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들어온 시위대를 경찰이 연행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그리고 그 뒤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시오"라는 말을 던진 유명한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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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을 '바보'라 칭하며 자신을 낮추고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누며 살다 가자.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도, 적게 가진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며 2009년 2월 16일, 서로를 사랑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한편 내일(16일)은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 오후 2시 주교좌 명동 대성당에서는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추모 미사가 봉헌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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