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나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쳤던 '독립투사' 유족의 마지막 모습
나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쳤던 '독립투사' 유족의 마지막 모습
입력 2019.02.11 17:41

인사이트KBS1 '역사스페셜'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운 독립투사 박상진 의사. 울산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판사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유능했다.


하지만 박상진 의사는 판사 자리를 거절하고 해외 독립운동 기지 설립을 위해 망명한 이들을 도우려 만주로 건너갔다.


박상진 의사는 누구보다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1915년에는 비밀 결사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전국 규모의 항일 비밀결사단인 광복회 초대 총사령을 지내며 일본 세금 탈취, 독립군 양성, 조선 총독 암살 기도와 같은 독립운동을 했다.


인사이트KBS1 '역사저널 그날'


그는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협조하지 않는 칠곡의 소문난 친일 부호 장승원 등 친일파 처단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18년, 박상진 의사는 일제에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만주에 있던 김좌진 장군이 박상진 의사를 구하기 위해 파옥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했다.


박상진 의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변호사 선임 등을 거부하고 1921년 38세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은 어떻게 지냈을까.


인사이트KBS1 '역사저널 그날'


박상진 의사는 경주 최부잣집 12대손이자 마지막 최부자였던 가문의 딸 최영백 여사와 결혼했다.


최부잣집은 약 300년간 부를 이어왔다. 특히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앞세워 동네 나그네나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밥을 먹이는 등 선행을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주의를 누구보다 잘 실천한 집안이었다.


또한 독립운동가 안희제와 함께 백산무역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줄 역할을 했다. 의병과 독립운동가의 은신처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정작 이 가문은 '배고픔'과 가난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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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KBS1 '역사저널 그날'


최부잣집의 최후는 지난 10일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내 돈 내놔 내 나라 내놔' 일제 세금 마차를 털어라' 편에서 낱낱이 공개됐다.


이날 심용환 역사작가는 1961년 실제로 한 신문에 실렸던 기사 일부를 소개했다.


기사 제목은 '식량이 떨어진 선열의 유족'이었다. 기사 사진에는 배고픔에 시달리다 얼굴이 퉁퉁 부은 최 여사의 모습이 담겨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KBS1 '역사저널 그날'


박상진 의사가 죽고 난 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시달리며 친척 집을 전전한 것이다.


심 작가는 "일제강점기도 때도 아니고 해방된지 16년이 흐른 61년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를 기리는 방식이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고 한다. 


친일파는 떵떵거리며 살고, 애국과 위국헌신한 이들의 최후는 '가난'이라는 사실이 참담하기 이를데 없다.


Naver TV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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