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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오늘, 한국 특수부대는 '아덴만 여명작전'을 펼쳐 해적을 소탕했다

8년 전 머나먼 이국의 바다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아덴만 여명작전이 펼쳐졌다.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오늘로부터 정확히 8년전인 2011년 1월 15일, 한국 상선 삼호주얼리호가 인도양 한가운데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당했다. 


배에는 한국인 8명, 인도네시아인 2명, 미얀마인 11명이 타고 있었다. 


다행히 납치 당시 근무 중이던 항해사가 조난 신고 통신망으로 납치 사실을 알리면서, 아덴만에 파견돼 있던 청해 부대가 급파됐다. 


납치 후 이틀 후인 17일 청대 부대는 첫 번째 구출 작전을 벌였다. 총격전을 벌이면서 해적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줬지만, UDT/SEAL 대원 3명이 부상을 당했다. 


할 수 없이 퇴각한 청해부대는 21일 두 번째 구출 작전을 시행했다. 작전명은 '아덴만 여명작전'이었다.


인사이트청해부대 훈련 모습 / 뉴스1


'여명'은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 희미하게 비춰오는 빛을 일컫는다. 여명이 비춰오는 때는 하루 중 가장 온도가 낮을 때이며, 포유류가 가장 경계심을 푸는 시간대이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4시 58분, 작전은 해적들의 눈을 속이면서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인근에 있던 오만 해군이 해적 고속정 주변을 포위했고, 청해부대는 최영함과 링스 헬기로 위협 사격을 가하며 해적의 시선을 교란했다. 완벽한 눈속임이었다.  


그 사이 UDT/SEAL 작전팀 대원들은 고속단정 3척에 나눠타고 삼호 주얼리호로 향했다. 6시 15분 배에 오른 작전 대원 15명은 15분만에 상선의 윗갑판 부근을 모두 장악했다. 


납치돼 있던 석해균 선장도 목숨을 걸고 구출 작전을 도왔다. 그는 배를 좌우로 흔들며 아주 느린 속력으로 몰았다. 이에 해적들이 석 선장에게 총격을 가해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뉴스1


UDT/SEAL 대원들은 빠르게 해적들을 쓰러뜨리며 6시 35분 선장실 근처에서 해적 두목까지 사살했다. 


납치돼 있던 선원들이 모두 구출됐고, 부상이 심했던 석해균 선장은 최영함으로 응급이송됐다. 이후 7시 57분에 배에 남아있던 해적들을 소탕하며 '아덴만 여명작전'이 끝이 났다. 


이때 또 한 명의 영웅 이국종 교수가 나타나 죽음의 위기에 놓인 석 선장을 살렸다. 해적들로부터 총격을 받은 석 선장은 오만의 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생명이 위태로웠다. 


인사이트아덴만 여명 작전 4주기 때 악수를 나누는 석해균 선장과 이국종 교수 / 뉴스1


현장으로 급파돼 석 선장의 상태를 살핀 이 교수는 "(석 선장을) 오만에 더 놔두면 사망한다"라며 에어 앰뷸런스를 이용해 한국으로 호송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에어 앰뷸런스 전세 비용이 40만 달러(당시 환화 약 4억 5천만원)에 이르렀지만, 이 교수는 "내 돈이라도 낼 테니 일단 이송부터 하자"며 석 선장의 국내 이송을 빠르게 추진했다. 


국내 이송 후, 이 교수가 직접 집도한 석 선장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이후 조금씩 회복한 석 선장은 예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8년 전,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았던 순간, 이를 지키기 위한 청해부대원들과 이국종 교수를 포함한 많은 의료 관계자들이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위험에 놓인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이들의 헌신으로 석 선장을 비롯한 당시 삼호 주얼리호의 선언들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