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31억원' 들여 세금 고지서처럼 용지 만든 뒤 '472억원' 모금한 적십자사
'31억원' 들여 세금 고지서처럼 용지 만든 뒤 '472억원' 모금한 적십자사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인사이트


[인사이트] 김서윤 기자 = "적십자 회비 참여로 우리 지역의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전해주세요." 


매년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우편함으로 적십자 성금 모금 용지가 날아들곤 한다. 12월에 내지 않으면 1월에 한 번 더 받게 된다. 


대한적십자사는 25세부터 75세 이하의 세대주를 대상으로 '개인 1만원, 사업자 3만원, 법인 10만원'을 납부 금액으로 정해 지로에 적어 보낸다.


지난해 이렇게 지로 납부를 통해 모인 돈은 472억2484만원에 달했다. 전체 모금액의 45퍼센트 정도다.


인사이트기사와 상관없는 자료 사진 /뉴스1


대한적십자사는 '모인 성금으로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누구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도록 생명을 지키고 있다'고 자사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모금액은 재난구호, 의료사업, 안전교육, 희망풍차, 위기 가정 지원, 특수 복지사업, 국제협력 등 인도주의 활동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성금 모금 용지가 꼭 세금 고지서처럼 생겨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용지의 모양, 디자인, 글씨체 등은 여타 세금 고지서와 너무 닮았다.


일부 기부자(?)들은 불쌍한 이들에 기부하려는 착한 마음을 갖기도 전에 무심결에 그 달에 납부해야 할 다른 세금들과 함께 의무인 냥 내기도 한다고.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인사이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고 얼떨결에 내는 이들의 하소연이 왕왕 올라오고 있다.


한 국민은 "적십자사에 내는 성금이 의무도 아닌데 고지서를 받은 첫 달에 기부하지 않으면 다음 달에 또 다시 날아오는 성금 지로는 꼭 납부해야 할 독촉장 같은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물론 고지서 뒷면에는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국민 성금'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하지만 세금처럼 의무적으로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친절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고지서를 통한 성금 방식은 전 세계 191개국 적십자사 중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사이트기사와 상관없는 자료 사진 /뉴스1


일본은 행정기관이 적십자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회원에게 직접 찾아가 걷는다. 미국은 공동모금단체나 홈페이지를 통해 모금한다. 스페인은 복권사업의 수익금 일부를 적십자사로 배분한다.


고지서를 제작하는 비용도 만만찮다. 지난해 제작·발송 비용으로만 31억6454만원이나 사용했다. 이는 전체 금액 대비 적지 않은 액수다.


대한적십자 측은 "과거에는 동네 통·반장이 돌아다니면서 직접 걷던 방식이었는데 영수증 미발급, 현금 수납에 따른 분실 등 문제가 많아 2000년부터 지로 납부가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이뿐만 아니다.


인사이트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 뉴스1


일부 시민들은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사를 해서 주소지가 바뀐 뒤에도 어떻게 알고 지로를 보내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 배부된 용지에는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가 기재돼 있고 전자납부번호와 납부할 가상 계좌번호, 납부기한이 명시됐다.


이에 대해 대한적십자사는 적합한 절차에 따라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입장이다.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에 따르면 회원모집이나 회비모금을 위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필요한 자료 요청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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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는 국가나 시·군·구로부터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 사업자의 상호 및 주소, 납부자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받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다양한 논란이 일반인들에 알려지며 적십자사 회비 납부액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세금인 줄 알고 내왔는데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사실을 알고 '속은 느낌'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도 한 몫 한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를 위해 대한적십자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