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백만장자' 연인 품에서 쥐약 마시고 목숨 끊은 '기생'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백만장자' 연인 품에서 쥐약 마시고 목숨 끊은 '기생'
입력 2018.12.05 18:20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사의찬미'


23세의 젊은 목숨을 백만장자의 외아들 눈앞에서 끊어 버렸다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일제 치하에 있었던 1923년 6월 11일. 평양 출신 기생 강명화가 온천 여관 객실에서 쥐약을 먹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23세.


소식이 전해지자 세간은 떠들썩해졌다. 조선을 넘어 일본과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강명화가 유명한 기생이었기도 했지만 강명화가 사랑하는 연인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 컸다. 강명화의 연인 또한 유명한 사람이었다.


22세의 장병천은 당시 경상북도에서 내로라하는 '99칸 한옥 대부호' 백만장자 장길상의 외아들이었다. 


장병천은 강명화를 떠나보낸 뒤 네 달 만에 연인이 목숨을 끊었던 같은 여관에서 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사의찬미'


어쩌면 예견돼 있던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에서 손에 꼽히는 거부의 장남과 기생의 사랑은 당시에는 절대 용인될 수 없는 관계였으므로.


여느 연인의 시작처럼 우연히 만나 운명이 된 두 사람은 곧 장병천 집안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강명화와 장병천은 이에 한때 일본으로 도피하기도 했지만 그곳에 사는 조선인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고 도망치듯 귀국했다.


돌아온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와 절연 당하고 모든 지원이 끊긴 장병천은 태어나 겪어본 적 없었던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게 됐다. 


이미 기생 일을 그만둔 상태였던 강명화도 처지는 같았다. 그뿐이었을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신분이 기생 출신인 자신은 상관없었으나 강명화는 자신 때문에 연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했다. 가난한 생활에 힘들어하는 연인을 보기도 고통스러웠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사의찬미'


나는 결코 당신을 떠나 살 수 없는데, 당신은 나와 살면 가족도 세상도 모두 외면합니다


어느 날, 강명화는 장병천에게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장병천을 만난 뒤 처음으로 부탁을 하나 한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옥양목(흰 무명천) 두 통과 흰 구두 한 켤레만 사 주세요. 입고 신을 것이 없어서 그러니..."


그렇게 선물로 받은 새 옷과 새 신발을 차려입고 신은 뒤, 강명화는 평양에서 손꼽히던 미모로 사랑하는 연인과 온천에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장병천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독약을 마셨다.


정신이 흐릿해져 가는 강명화를 품에 안은 장병천이 오열하며 "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고 묻자 강명화는 희미하게 웃으며 "세상 사람 중에 가장 사랑하는 나의 파건(장병천의 별명)..."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사의찬미'


죽기 전 강명화는 연인에게 잘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장병천은 연인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강명화의 장례를 치른 후 한 달 만에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고 그해 10월, 결국 강명화와 같은 여관 객실에서 같은 방법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기생과 백만장자 아들의 음독자살 사건은 그렇게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이는 당시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요새도 소위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보는 사랑이 얼마나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았을까.


두 사람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 여럿 출간되기도 했다. 집안의 이야기가 세간에 떠도는 것이 싫었던 장병천의 집안에서는 책이 발간되자마자 전국에 배포된 소설을 전량 구매해 불태워버렸다. 


이 소설들을 사들이느라 장병천의 부친 장길상은 막대한 돈을 날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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