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부모 돈 대신 갚아라"···3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한 대한민국 '연좌제'
"부모 돈 대신 갚아라"···3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한 대한민국 '연좌제'
입력 2018.12.19 19:34

인사이트사진 제공 = bnt


[인사이트] 권길여 기자 = 최근 "부모가 진 빚을 대신 갚으라"며 언론에 제보,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네 사람에게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망갔다는 마이크로닷(26) 부모의 사기 사건이 조명돼 해결될 양상을 보이자, 너도 나도 연예인 자식 이름을 운운하며 "빚을 갚으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마이크로닷이 쏘아올린 공은 도끼(29), 비(37), 휘인(24), 차예련(34), 마동석(48), 이영자(51), 이상엽(36), 티파니(30), 한고은(44), 조여정(38), 윤민수(39), 김태우(38) 등에게까지 퍼졌다.


대부분 빚을 갚지 않는 당사자나 그의 자식인 연예인과 먼저 접촉해 문제 해결을 도모하기 보다는 언론에 일방적으로 제보, 연예인 자녀에게 망신을 주는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인사이트순서대로 가수 비와 배우 마동석 / (좌) 뉴스1, (우)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빌려준 돈 못 받은 이들의 억울함 vs 아무 죄 없는 자식들의 억울함


돈은 생계와 직결되는 사항이다. 빚을 변제받지 못한 이는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허덕이며 살아갈 수도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선의로 지인에게 돈을 빌려준 이들의 원통한 심경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연대보증을 선 게 아니라면 자식에게는 죄가 없다.


애꿎게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이 애먼 피해를 보고 있어 씁쓸함을 안긴다.


가수 비는 무려 30년 전인 1988년, 그가 7살이었을 때 어머니가 2,500만원을 빌려갔다가 갚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비 측은 "사기 주장 당사자가 말하는 채무 금액을 공정한 확인 절차를 거쳐, 확인되는 금액에 한에서 아들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전액 변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비의 모친은 이미 고인이 돼 사실 관계 확인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비 측은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와 만나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으나, 차용증이나 어음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비 측은 고인이 된 어머니에 대한 모욕과 폭언, 협박, 1억원의 합의금을 요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이트순서대로 마마무 휘인과 배우 차예련 / 뉴스1


연 끊고 살아도 대신 해결해야 하는 상황


걸그룹 마마무의 휘인이나 차예련, 티파니의 사례는 안타깝기 그지없어 동정 여론이 일고 있다.


휘인은 이혼한 아버지가 진 빚이 폭로돼 속앓이를 했다.


휘인은 빚 논란과 관련 "현재 아버지가 어디 사시고 무슨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가족들과 상의해 (피해를) 원만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나는 친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친아버지는 무관심했고 가장으로서 역할도 등한시 했다. 때문에 가족은 예기치 못한 빚에 시달리는 등 가정은 늘 위태로웠다. 부모님은 2012년 이혼하셨지만, 어머니는 몇 개월 전까지도 신용불량자로 살아야 했다. 이혼 후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지만 그 이전까지 많은 피해를 어머니와 제가 감당해야 했다"며 아픈 가정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차예련 역시 19살 이후 15년간 얼굴도 못 본 아버지의 빚이 폭로된 경우다.


차예련은 "토지거래 사기를 친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10년간 노력, 10억원 정도 갚았다"며 "촬영장이나 소속사 사무실로 모르는 사람이 찾아왔고, 아버지가 빌려간 돈을 대신 갚으라며 나를 붙잡고 사정하거나 폭행을 휘두루는 분들도 있었다"고 불우한 환경을 고백했다.


인사이트배우 한고은과 가수 티파니 / (좌) 지앤지프로덕션, (우) 사진 제공 = 엘르


유명 자식 판 부모 때문에 대신 망신 당하고 있는 연예인들


소녀시대 티파니도 7년간 연을 끊고 산 아버지의 사기 논란에 피해를 봐야 했다.


티파니는 "아버지로부터 상처 입으신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문을 연 뒤 "나 역시 아버지로부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데뷔 이후에도 아버지 때문에 협박을 받았으며, 아버지로부터 빚을 갚으라는 강압을 당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고은과 조여정의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도끼와 마이크로닷은 각각 "1천만원 빚? 내 한 달 밥값이다", "부모님 사기설 사실무근,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하겠다" 등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대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나, 사실 부모님이 빚을 질 당시 이들은 많이 어렸다.


사건 당시 도끼는 고작 13살이었으며, 마이크로닷은 5살 어린이였다.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 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이미 사회적으로 '신분제도'와 '연좌제', '고문'같은 원시적 제도가 폐지됐다.


공식적으로는 1984년 전두환 정권 때 '형사책임 개별화 원칙'이 선언 되면서 연좌제가 사라졌다.


실제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에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8년 다시 연좌제가 등장했다.


알리고 싶지 않은 가정사가 떠벌려지는 것은 일종의 '협박'이며,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이다.


안타깝게도 스타들은 법적 책임이 없음에도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도의적 책임을 강요받고 있다.


인사이트인사이트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빚투'(나도 떼였다)의 씁쓸한 명과 암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를 둔 자녀를 흔히 '금수저'라, 이와 반대되는 이들을 '흙수저'라 부른다.


둘 다 본인의 능력이나 잘못이 아니기에 으스댈 필요도, 주눅들 필요도 없다.


이는 '빚수저' 역시 마찬가지다.


능력이 될 경우 부모의 빚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나, 연예인이 이 일로 인해 프로그램에서 해고를 당하는 등 2차 피해를 입어선 안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구 엄마, 아빠에게 빚을 떼였다'라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개그맨 김영희(36)의 어머니에게 빚을 떼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채무 불이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하지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빚투'가 본질을 잃고 애먼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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