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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롯데·오리온·해태' 무서워 신제품 안 만들랍니다"

열심히 공들여 개발한 새로운 제품을 마구잡이로 따라하는 '카피캣' 문제 때문에 과자업체 전반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Instagram 'haitai_co'


과자업계에 관행처럼 만연해 있는 '카피캣' 


[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잘 나가는 제품을 그대로 따라하는 '미투 제품'을 일컬어 '카피캣'이라고 부른다. 


2012년 애플 신제품 발표회에서 스티브 잡스가 삼성전자·구글·모토로라를 '카피캣'이라 지칭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고 하지만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배끼기'를 일삼는 업태를 보면 부끄러움은 소비자의 몫이다. 


수많은 업계가 카피캣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한창인 요즘,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생명인 제과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인사이트Facebook 'HaitaiCo'


서로 '제 살 깎아먹기' 중인 대형 제과업체 


롯데제과, 오리온, 해태제과와 같은 대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로 미투 제품을 내놓으며 '제 살 깎아먹기'를 해온지 오래다. 


과거 롯데제과는 해태제과가 '홈런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슬그머니 '마이볼'을 내놨고, 빙그레의 효자 제품 '메로나'를 따라 맛과 포장지가 유사한 '메로니아'를 출시했다. 


오리온과의 '초코파이 싸움' 역시 유명하다. 과거 오리온이 초코파이로 대박을 내자 롯데제과는 유사제품 '쵸'코파이(현 초코파이)를 출시했다. 


오리온은 표절을 문제 삼으며 롯데제과를 고소했으나 대법원은 '초코파이'가 말 그대로 '초코'를 이용한 '파이'라서 보통명사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롯데는 이후 초코파이의 제품 포장지, 색깔, 디자인 등에서 오리온을 줄곧 따라 하고 있어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사이트Instagram 'orion_world'


그런가 하면 오리온은 '꼬북칩'이 일본 야마자키 비스킷의 '에아리아루'를 본떴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3월 출시돼 '중독성甲' 과자로 입소문을 탄 꼬북칩은 맛과 모양 모두 '에아리아루'의 '구운 옥수수 맛'과 비슷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오리온 측은 2009년부터 4겹 과자를 만들기 시작해 2011년에 개발이 중단됐다가, 8년의 노력 끝에 최종적으로 꼬북칩을 완성한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또한 오리온 측은 꼬북칩은 고온 반죽에 압력을 가해 뽑아내는 방식을, 일본 제품은 반죽 네 겹을 붙여서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해명했으나 결국 유사성 논란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인사이트사진 = 인사이트 


대기업이 중소기업 제품 표절하는 경우도 많아 


이처럼 과자업계 전반이 카피캣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대기업이 힘 없는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를 빼앗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지난 5월 식품 벤처 SFC바이오의 김종국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기업 해태 이래도 되나. 걸음마 중소기업 죽이려 든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SFC바이오가 지난해 수박 맛 초코파이 '수박통통'을 출시했는데 올해 5월 해태제과가 유사품 '오예스 수박'을 내놓으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 


인사이트김종국 SFC바이오 회장 페이스북 


SFC바이오 측은 "해태제과가 제품 디자인 뿐 아니라 초록 빵에 빨강 마시멜로까지 그대로 모방했다"며 "오예스 수박이 출시되자 매출이 30% 이상 줄어들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해태제과는 유사한 맛을 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표절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또한 "'수박통통'은 파이지만 '오예스'는 케이크"라며 "적용된 기술 역시 '수박통통'엔 추출 기술이, '오예스'엔 농축 기술이 쓰였다"고 해명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과일 맛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SFC바이오의 승소가 어려우리라 전망하고 있다. 


인사이트김종국 SFC바이오 회장 페이스북 


'대기업 VS 중소기업'은 다윗과 골리앗 싸움 


이들 간 분쟁의 결과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할테지만 흔히 '대기업 VS 중소기업'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된다. 


과자업계의 경우엔 더 그렇다. 눈으로 볼 땐 누가 봐도 표절이라는 말이 나올지라도 맛의 보편성 때문에 쉽게 법적 조치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름이 덜 알려진 중소 과자업체의 경우 대기업이 내놓는 카피캣의 '광고력'과 '물량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힘없는 중소기업이 만든 신박한 제품은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그 아이디어만 쏙 빼간 대기업의 과자는 소비자의 열렬한 사랑 속에 '대세 제품'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정정당당함은 버려둔 채 마치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처럼 대대적으로 카피캣 제품을 광고하는 대형 과자업체들을 보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Instagram 'orion_world' 


콜라보레이션-기술 제휴 등 통해 제과업계 생태계 만들어야


대기업의 카피캣은 단순히 중소기업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아예 성장 발판을 막아버리는 '잔인하고 치졸한' 행태다. 


"논란은 잠깐일 뿐 소비자들은 금방 잊고 말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인식 개선 및 시정 노력에 신경을 써야 하는 시점이다. 


탐나는 제품을 '빼앗을'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요즘 대세인 콜라보레이션을 추진하거나 정당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기술 제휴를 맺는 건 어떨까. 


중소기업의 아이디어와 기술력, 대기업의 자금력과 유통망이 함께라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 상생을 통해 성장하는 쪽으로 가야 제과업계 전반의 생태계가 탄탄해지고 다양성이 제고될 것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정부도 중소기업의 피해 사례 세심히 살펴야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건강한 경쟁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부 차원에서 영세 업체의 설움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맛이나 콘셉트가 비슷하다고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품 표절에 대한 기준을 더 엄격히 세우고 감시 및 제재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따라쟁이 기업'이 만든 과자는 아무리 맛있어도 먹고 싶지 않은 법이다. 과자업체들은 지금부터라도 반성하고 제 살 깎아먹기와 중소기업 죽이기를 멈춰야 할 것이다. 


공정한 방식으로 경쟁에 임하고 '내가 만든 자식'이라며 당당하게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어야 소비자들에게 진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