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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행적' 드러나 국민적인 분노 일으킨 국내 대기업 창업주 2인

일제시대 당시 친일파 행적이 드러나 국민적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국내 대기업 창업주의 과거 행적을 정리해봤다.

인사이트(좌) 두산그룹 창업주 故 박승직 초대회장, (우) 삼양그룹 창업주 故 김승직 회장 / 사진 제공 = 두산그룹, 삼양


친일 행위 드러나 분노 산 대기업 창업주


[인사이트] 심채윤 기자 = 현재 우리나라에는 경제 전반을 먹여 살리는 여러 대기업이 있다.


이들 기업들은 오래 전 창업부터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성장해 국내 경제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대부분 대기업이 오랜 역사가 있는 만큼, 창업주나 그 조상의 친일 행적이 밝혀져 논란이 된 곳도 존재한다.


누군가는 친일의 뿌리를 가진 기업을 불매운동하는 반면, 누군가는 이에 대해 '연좌제'라며 너그러이 보기도 한다.


인사이트영화 '암살' 속 반민특위재판의 한 장면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던 우리가 100년이 지난 현재 역사의 단죄를 물을 수 없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친일의 대가로 얻은 기득권을 후손이 이어받아 더 많은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면, 그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말에도 분명 일리가 있다.


적나라한 친일파 행적으로 국민적 분노를 일으켜 비난을 산 대기업 창업주 2인의 과거 행적을 정리해봤다.


이들 창업주의 친일파 행적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판단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라는 점을 밝힌다.


1. 두산그룹 창업주 故 박승직 초대회장


인사이트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승직 초대회장, 박용곤, 박두병 두산 창업주 일가 모습 / 사진 제공 = 두산그룹


두산그룹은 122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기업이다. 1896년 서울 종로의 '박승직 상점'으로 두산그룹의 전신이 세워졌다.


두산그룹을 세운 창업주 故 박승직 초대회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선구적 기업가이자 민족 자본가로 알려졌지만, 학계에서는 '원조 친일기업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창업주 故 박승직 초대회장은 1919년 조선경제회 이사, 1921년 일선 기업의 융합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산업대회의 지방위원, 1922년 조선실업구락부 발기인으로 지냄이 드러나면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인사이트(좌) 1934년 박승직상점의 모습, (우) 보부상이었던 박승직 창업주 / 사진 제공 = 두산그룹


1938년에는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모집 등에 앞장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후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평의원에 선임되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 등에 따르면 故 박승직 초대회장은 안중근이 중국 하얼빈에서 암살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는 '국민대추도회'의 발기인이자 위원으로 참여했다.


일본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당시 그의 활동이 잘 드러나 있다.


인사이트중일전쟁의 발발 원인을 중국에 돌리며 일본을 옹호하는 박승직, 1937년 11월 10일자 매일신보 / 사진 제공 = 한국언론진흥재단


1938년 2월 2일자 '쌍수드러 축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그는 "조선인에게 지원병제도를 시행하게 된 것은 조선인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조선인도 제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된 것을 경축한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1년 일본 해군에 헌금을 냈고 이후에도 두 차례 더 방공감시대 위문금과 국방헌금을 헌납했다고 밝혀졌다. 또한, 자신의 성을 미키(三木)로 창씨한 뒤 사명을 '미키상사'로 바꾸기도 했다.


2. 삼양그룹 창업주 故 김연수 회장


인사이트故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 회장 / 사진 제공 = 삼양


삼양그룹 창업주 故 김연수 회장도 일본 전쟁에 협력하며 오랫동안 친일 기업인으로 활동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1927년 10월 오늘날 삼양그룹의 전신인 '삼수사'를 창업한 당시 故 김연수 회장은 국민총력조선연맹(1940), 조선임전보국단(1941), 조선 국민의용대(1945) 등 친일 단체의 간부직을 맡았다.


1945년 광복 직후 친일파로 지목받은 그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돼 검찰 앞에서 그 죄를 순순히 시인하고 속죄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삼양그룹 창업주 故 김연수 회장이 "일제에 국방헌금을 내고 학도병 권유연설에 참여하는 등 친일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인사이트1920년 창업주 김연수의 최초 기업형 농장 장성농장의 모습 / 사진 제공 = 삼양그룹


그러나 故 김연수 회장의 후손들이 친일반민족 행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내며 비난 여론은 다시금 들끓었다.


결국,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친일행위가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재판부는 "교육사업과 사회활동에 기부했고 경성방직의 민족 기업적 성격을 고려할 때 간접적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37년 이후 내선일체와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친일교육을 위해 거액을 기부한 점에 비춰 친일행위 결정은 적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