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3일만에 남편 숨지자 대신 회사 맡아 '5조'로 키운 '여장부' 애경 장영신 회장
출산 3일만에 남편 숨지자 대신 회사 맡아 '5조'로 키운 '여장부' 애경 장영신 회장
입력 2018.10.14 15:35 · 수정 2018.10.18 20:30

인사이트(좌)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우)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 / 사진 제공 = 애경그룹


[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모성 남편의 유업을 그냥 버려둘 수 없다는 의리에서 무모한 모험을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CEO이자, 여장부로 불렸던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본인의 자서전 '밀알 심는 마음으로'에 쓴 기업인 데뷔 소감이다.


장 회장은 기업인의 길을 걷기 전 가정주부였다. 슬하에 3남 1녀를 둔 아주 평범한 가정주부.


그러나 평범한 삶은 영원하지 못했다. 1970년 7월. 그가 막내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남편이 갑작스럽게 저세상으로 떠났다.


애경유지 공업 창업주였던 남편의 타계로 그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없는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된 가족


남편인 채몽인 애경유지 공업 창업주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


채몽인 선대회장의 마음씨는 그가 지은 회사 이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정신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뜻에서 '애경'이라고 사명을 지을 정도로 말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장 회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인사이트장남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 사진 제공 = 애경그룹


장 회장은 결국 실의에 빠져 집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도 1년여간이나.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것도 모자라 혼자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충격에 빠진 장 회장을 위로한 건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당시 10살 정도였던 장남은 장 회장에게 다가가 "엄마, 걱정 마. 학교 앞에서 떡볶이 장사하면 되잖아"라고 위로를 건넸다고 한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애경그룹


아이들 덕분에 일어난 장영신남편 1주기 계기로 경영 본격 참여


아이들의 따뜻한 위로 덕분에 장 회장은 일어섰다.


그리고 남편의 타계 1주기를 계기로 경영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비록 혼자지만, 남부끄럽지 않게 네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경영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한 장 회장은 남몰래 6개월간 경리 학원을 다니며 '복식부기'와 재무제표 보는 법을 익혔다.


이후 장 회장은 1972년 7월 1일 처음으로 경영에 첫 발을 디뎠으며 정확히 한 달 뒤인 8월 1일 사장에 취임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없는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여자 사장'이란 이유로 시작된 남자 임원들의 은근한 무시 장 회장, 아이들 떠올리며 인내…임원에게도 '명령' 아닌 '존중'


장 회장이 경영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주변의 인식은 썩 좋지 못했다고 한다.


여자 사장 밑에서 일을 못하겠다며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는 남자 임원들도 있었기 때문.


은근한 무시가 계속될 때마다 장 회장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참고 또 참았다.


임직원을 대할 때에도 명령 대신 상대방의 생각을 물어보는 방향으로 대화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리더십 덕분에 덕장 회장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사이트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카리스마 넘치는 재계 맏언니' 장영신 회장외국 업체 임원들이 '터프우먼'으로 부르기도


장 회장은 여장부 같은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영국 브랜드 유니레버사와 합작해 애경산업을 설립하던 때에도 애경이 경영을 주도해야 한다는 다소 까다로운 조건을 내밀었다. 당시 애경 임원들은 합작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그러나 유니레버는 당찬 장 회장의 모습에 선뜻 합작 의사를 밝혀왔고, 1984년 애경과 유니레버는 애경산업을 출범했다.


장 회장의 끈기를 본 당시 외국 업체 임원들은 그를 '터프우먼'으로 불렀다고 한다. 장 회장의 여장부 같은 면모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부드러움과 카리스마가 공존해 '카리스마 넘치는 재계 맏언니'로 불리는 장 회장. 장 회장의 이런 리더십은 업계에서도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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