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한글 가르치다 짤린 뒤 민족학교 세우려 '두꺼비 소주' 참이슬 만든 남성
일제 때 한글 가르치다 짤린 뒤 민족학교 세우려 '두꺼비 소주' 참이슬 만든 남성
입력 2018.10.14 11:41

인사이트(좌) 진로 창업주 우천 장학엽 / 한국학중앙연구원 (우) 참이슬 모델 아이유 / YouTube 'HITEJINRO'


[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크으". 자그마한 잔에 담긴 액체를 입에 톡 털고 꿀떡 삼키면 절로 나오는 감탄사다.


독특한 쓴맛과 향 때문에 처음에는 인상을 쓰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 액체의 이름은 바로 '소주'다.


우리는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늘 소주를 찾곤 한다. 소주만큼 우리 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술도 없을 것이다. '한국인의 술'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지금은 어떤 브랜드의 소주를 마셔도 '쓴맛'을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처음부터 쓴맛이 났던 것은 아니다.


소주 특유의 '쓴맛'은 진로(현 하이트진로, 하이트맥주가 지난 2005년에 인수)의 창업주 우천(友泉) 장학엽 선생 손끝에서 탄생했다.


인사이트(좌)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당시 도산 안창호의 모습, (우) 형무소 수감 당시 도산 안창호의 모습 / 도산기념관 


일제강점기에 도산 안창호 선생 가르침을 가르치다 '교편' 내려놔


장학엽 선생은 술도가의 길을 걷기 전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황해도 곡산 공립 보통학교에서 조선어 담당으로 교편을 잡았던 당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가 노골화되던 때 장 선생은 조선인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다.


곡산 공립 보통학교 교사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교장 또한 일본인으로, 장 선생의 교육이 좋게 보일 리 만무했다.


특히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시도가 거세졌던 만큼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인용해 학생들을 가르쳤던 장 선생은 교장을 비롯해 일본인 선생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결국 장 선생은 사직을 강요받았고, 어쩔 수 없이 교단을 떠난다. 대신 그의 마음에는 학생들이 민족의식을 높일 수 있는 사립학교를 세우겠다는 목표가 크게 자리 잡았다.


인사이트Facebook '하이트진로'


사립학교 세우기 위해 '소주'에 관심을 두다


그러나 당장 실행에 옮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립학교를 세우려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데, 집안의 가업인 과수원으로는 택도 없었기 때문.


창업을 고민하던 장 선생 눈에 '소주'가 눈에 들어왔다. 소주를 본 장 선생은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의무감이 들었다.


'조선사람 입맛에 맞는 술은 조선사람이 만들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장 선생은 양조업의 경험이 있는 홍석조, 강기욱 두 동업자와 함께 술을 빚기로 결정한다.


장 선생은 1924년 10월 3일 동업자와 함께 평남 용강군 진지면 진지동에서 '진천양조상회'를 설립했다.


'진로(眞露)'라고 술의 이름도 지었다. 진지동(眞池洞)의 앞글자와 술을 빚는 과정에서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히는 모습에서 로(露, 이슬 로)를 착안했다.


인사이트YouTube 'HITEJINRO'


시장 과열에 결국 '진천양조상회' 문 닫다


동업자들과 야심 차게 출발했건만 실적은 좋지 못했다. 누구나 양조업을 할 수 있었던 환경인 만큼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자본을 확보한 대규모 양조장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사업을 이어 갈수록 적자는 계속 누적됐다. 결국 '진천양조상회'는 문을 닫았다.


실패라는 고배를 마시고 2년여간 허송세월을 보냈지만, 마냥 낙담하기에는 장 선생의 나이는 어렸다.


부모님의 따뜻한 격려를 받고 장 선생은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1927년 '진천양조상회'라는 간판을 건다. 이때 그의 나이는 27세에 불과했다.


인사이트YouTube 'Icheoncity'


쓴맛 소주 '진로'로 재기에 성공하다


예전 상호를 사용한 장 선생은 제품명 또한 '진로'를 그대로 사용했다.


다시 사업을 시작한 장 선생은 '차별'에 중점을 뒀다. 레드오션인 양조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끝없는 연구와 실험을 반복하던 그는 독특한 쓴맛을 지닌 소주를 만들어냈다.


일본인 양조업자들이 만드는 소주와 차별화를 둔, 우리 고유의 증류식 소주 '진로'가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독특한 맛에 애주가들은 열광했다. 뜨거운 시장 반응에 힘입어 장 선생은 유리병에 술을 담아파는 시도를 한다. 해외 사례를 적용한 것이다.


소주를 유리병에 담았더니 매출은 더욱 높아졌다. 보관이 편해 소비자는 물론 도매상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YouTube 'Icheoncity'


한국 전쟁이 앗아간 '꿈'…휴전 후 서울서 다시 '진로' 부활


그리고 마침내 해방이 됐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장 선생은 일가를 이끌고 월남해 부산에 터를 잡았다.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온 장 선생은 경험을 토대로 부산에서 재기를 모색했다.


1953년 마침내 휴전에 들어갔고, 부산에 있던 장선생은 서울로 상경해 다시 터를 잡았다.


서울에 온 그는 서울 영등포 신길동 소재에 땅을 매입, 공장을 짓고 '서광주조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와 동시에 진천양조상회의 상표였던 '진로'를 부활시킨다.


인사이트YouTube 'Icheoncity'


부활 성공에 '우천학원' 설립


부활에 성공한 진로는 한국 사람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하며 승승장구한다.


사업의 성공에 마침내 그는 1974년 학교법인 우천학원(우신중·고등학교)을 설립했다. 오랜 숙원을 이룬 셈이다.


그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립학교를 세운 뒤에도 장 선생은 각종 지원 사업과 장학 사업을 이어가며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창업자이자 진로 소주의 개발자였던 장학엽 선생은 1985년 타계했다. 이후 진로는 2005년 하이트맥주(현재 하이트진로)에 인수됐다.


장학엽 선생은 영면에 들었지만, "조선사람 입맛에 맞는 술은 조선사람이 만들어야 한다"라는 그의 일념은 주류 업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이트 / 사진=인사이트사진=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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