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버린 소방관 아들 유언 지키기 위해 아빠가 쓴 마지막 호소문
국가가 버린 소방관 아들 유언 지키기 위해 아빠가 쓴 마지막 호소문
입력 2018.10.12 18:56 · 수정 2018.10.12 18:57

인사이트EBS1 '지식채널e'


[인사이트] 김천 기자 = "아버지, 이 싸움은 힘든 싸움이 될 거예요. 그래도 저는 아들에게 병에 걸린 아빠보다는 소방관 아빠로 기억되고 싶어요"


지난 2014년 6월 23일 새벽 故 김범석 소방관은 아버지 김정남(70) 씨에게 이와 같은 유언을 남기고 두 살 배기 아들과 아내를 두고 3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 소방관은 지난 2006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119구조대와 중앙 119구조본부에서 8년간 소방관으로 일했다.


화재 진압 230번, 구조 활동 751번, 350여 명의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몸에 악성 종양이 자라는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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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 소방관은 지난 2013년 숨이 가빠 찾은 병원에서 희소암인 혈관육종암을 진단받았다. 그리고 7개월간 투병하다 숨을 거뒀다.


공무원연금공단은 김 소방관이 앓은 혈관육종암의 발병 원인과 감염경로가 화재 현장 등에서 발생한 질병으로 볼 수 없다 보고 유족 보상금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국가가 외면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는 김 소방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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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해 3월, 제1심 판결에서 법원은 유족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그리고 지난달 20일 치러진 2차 소송 변론에서도 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모두 소방관 스스로가 현장의 유해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선 인구 5천만 가운데 단 4명이 혈관육종암이 발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소방관이 2명이다. 


그런데도 김 소방관의 유족은 오는 25일 2심 판결 선고일 전까지 소방관 업무와 혈관육종암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학적 문헌을 찾아 추가 자료를 제출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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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도 발병 원인을 밝혀낼 수 없는 병을 개인이 입증해야 한다.


아버지는 부당하다 생각해 재판장에서 준비한 호소문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원고(김범석 소방관의 아내)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김정남 씨는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언젠가 손자가 "할아버지, 우리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요?"하고 물어보면 "네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소방관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예정이다.


다음은 아들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김범석 소방관의 아버지 김정남 씨가 재판장에서 읽으려 했던 호소문이다.


故 김범석 소방관 유족의 호소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공공의 크고 작은 송사를 처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있는 故 김범석 소방관의 아비 된 사람입니다. 성명은 김정남이며 나이는 70세입니다.


2014년 6월 23일 새벽 2시 20분, 김범석 소방관은 숨을 거뒀습니다.


심장 혈관육종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 공무원 연금공단과 1차 행정소송에서 공무상 사망 불인정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2차 소송 판결을 앞두고 유족에게 변론할 기회를 주신데 대해 경의를 표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늙은 아비의 가슴 속에 맺힌 통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故 김범석 소방관은 31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습니다.


젊은 꿈을 펼치고자 했던 소방관이 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했습니다.


화재를 진압했었고 불 속에 들어가 시민을 구조했으며 바다에 뛰어들어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호수 또는 범람한 강물 속에서 시신을 인양했습니다.


병들어 쓰러질 때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원도 없고 한도 없이 살다 갔습니다.


국가는 청년들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해 국가 안전의 일선에 배치해두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케 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직무를 수행하는 소위 위험직 공무원이란 명칭을 부여해놓고 그 책임을 맡기고 있습니다.


화마 속으로 들어가도록 명했고 잠수복을 입고 극심한 수압 속으로 뛰어들도록 명했습니다.


국가는 그들에게 방화복과 산소마스크 하나로, 그리고 잠수복과 연결된 산소호스 하나로 소방관의 생명과 질병, 안전이 보장될 거라고 믿으려 한다면 너무 가혹한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령은 있었으나 다치고 병들어 만신창이가 돼 있는 병상의 소방관, 이유도 모른 체 죽어간 소방관, 살아서도 이름 없는 소방관에게 국가는 무심했고 애써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소방관의 희생은 한순간 빛나는 일회성의 의인이 아닙니다.


수백, 수천, 살신성인의 행동으로서 온 몸을 던지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국민이 가장 친숙하게 불러주는 평생의 동반자입니다.


엄숙한 법정에서 정의의 법 봉을 들고 계신 재판장님의 이름으로 부디 이 땅의 소방관에게 희망이 있는 미래를 만들어 주시고, 용기와 헌신을 한 줌의 재로서 떠나보낸 후 홀로 남겨진 가족에게 국가가 따스한 손을 내밀고 있음을 증명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제복을 입고 쓰러진 故 김범석 소방관에게 희귀 질병이란 오명으로 그의 이름을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그가 이루고자 했던 소방관의 꿈이 이뤄지게 해주시고, 유족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들이 남기고 간 소방관의 명예를 다시 찾게 해 주십시오.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아비로서, 소방관으로 살다 간 자식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놓을 때까지 소방관인 자신을 사랑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신체 건강했던 31살 젊은 청년에게 혈관육종의 인과관계는 소방관 직무 약 8년 동안 육ㆍ해상 재난재해의 현장 말고는 달리 악성인자를 만들만한 상황이 없었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군 복무 후 오로지 소방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한 것밖에 없었으니 270회 화재출동과 751회 구조출동 기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공무에 기인한 질병원인과 감염경로가 거기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 유족의 확신입니다.


국가는 소방관의 희귀암과 작무와의 인과관계를 현대의학으로 밝혀낼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기각의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헌신했던 소방관의 죽음에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소방관은 국가안전의 수호자로서 직무의 의무가 있으며, 국가는 결과에 따른 최종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기관이 밝혀낼 수 없는 분야라면 그 책임이 국가의 몫이어야 하지 가장을 잃은 유족에게 입증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이중의 고통을 주는 일이며 일반적인 상식에도 맞지 않고, 국가가 그리해서도 아니 되는 일입니다.


의학적 근거와 감염경로가 불명확하다는 한마디 말로서 죽은 자의 희생과 헌신 전부가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그 말을 수용할 수 없는 유족의 다툼은 국가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담할 뿐입니다.


유독 소방관에게 많은 희귀질환 발병은 피할 수 없는 유독성 물질의 노출과 스트레스, 해저수압, 오염된 수질, 트라우마, 외상 등 사람에 따라서는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인체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과입니다.


그러한 환경인자는 언제든 소방관을 공격하고 있는 독창이라 할 수 있으나 소방관은 온몸으로 방패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위험직 소방관의 희귀질환을 완벽하게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행정이 없다면 속수무책인 그들의 희생을 국가가 배려함으로써 소외된 유족과 바라보는 많은 국민의 마음도 함께 위로가 되리라 봅니다.


이 시대의 재난현장에는 피할 수 없는 질병의, 자연적 또는 화학적 인자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의 죽음 앞에 의학적 소견이 중요하겠지만, 환경평가가 우선돼야 합니다.


그곳이 소방관에게 찾아온 절망 앞에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병마의 근원이 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재산을 보호하는 엄청난 과정들이 질병의 불확실한 인과 관계에 의해 모두 지워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언제까지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수백, 수천,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들의 위험직무 전체가 부정되고 유족을 두 번 울릴 것인지, 얼마나 더 많이 소방관을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이름 없이 죽어가야 하는지, 헌신했던 소방관에 대한 처우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감히, 국가에 묻겠습니다.


위험에 처한 수백의 생명과 재산을 구해냈던 소방관의 헌신 가치가 어떻게 근무 중 찾아온 병마의 불확실한 인과관계보다 못 한단 말입니까?


국가가 만들어 놓은 인과관계의 틀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방관이 어떻게 병사해야 하고 얼마 나 더 만신창이가 돼야하는 것입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소임을 다 했던 그들의 명예가 기억되도록 해주십시오.


시민의 희생을 대신했고, 고통을 함께 나눴던 숭고한 직업, 절망의 늪에서 구조 돼 새로운 삶을 되찾아 준 국민의 심부름꾼, 남은 유족이 소방관으로 살다간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안전한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소방관에게 발암물질로부터의 노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욱 안전한 장비를 가지게 해야 합니다.


적어도 소방관의 안전과 질병의 예방은 장비로부터 나와야 하며, 근무 중 병사한 소방관의 죽음에 대한 인과관계는 국가가 입증해야 옳은 절차라 할 것이며 이제는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한 힘겨운 다툼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병상에서 더 이상 출동할 수 없는 그들의 삶과 죽음이라는 갈림길을 따뜻하게 배웅해 주는 것이 국가의 손이어야 하며 그것이 제도적 개선으로 뒷받침되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현장의 소방관은 생명을 살리는 용기와 능력을 가진 영웅으로 존중받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한 걸음 돌아서면 남편이며, 아빠이고, 아들이며, 국민입니다.


전문 소방인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소방관은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내일도 있어야 할 국가의 또 하나의 재산입니다.


그들의 얼굴에 흘러내린 검은 땀방울이 떳떳하고 영예로워야 합니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생명을 살리고 안전과 구조, 구급을 알려주는 시민의 이웃이며 믿음입니다.


그것이 故 김범석 소방관이 남기고 간 흔적입니다.


아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범석아 너는 소방관으로서 열심히 살았다. 수고했다. 편히 쉬어라.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몰랐고 만나보지도 않았던 고 김범석 소방관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공감하고 동참해주신 많은 분의 응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119소방관 직무를 수행하고 계시는 모든 소방관의 건강과 안전이 함께하시길 바라고 부상과 투병, 재활의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소방관 여러분들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족의 작은 변론일지라도 부디 귀담아 주시고 한 젊은 소방관의 죽음에 대해 살아생전 맡은 바 책임에 열정을 다했고 주어진 소임에 물러서지 않았던 그의 생애를 법으로써 살펴보시고 양심으로서 판결해 주시길 간곡히 호소합니다.


2018년 9월 20일 故 김범석 소방관 부친 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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