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창 문화'에 구역질까지 했다는 조선시대 선비의 생생한 목격담
일본 '남창 문화'에 구역질까지 했다는 조선시대 선비의 생생한 목격담
입력 2018.10.09 18:44

인사이트주인 몰래 여성과 입 맞추는 미소년 / 니시카와 스케노부 作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숙종 45년(1719년)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방문했던 신유한은 일본의 충격적인 '풍속'을 접하게 된다.


많은 일본 남성들이 미소년 '남창'과 성행위를 즐겼던 것.


이 풍속에 놀란 신유한은 당시 일본 최고의 유교 학자였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당신도 남창을 하시오?"


그러자 아메노모리는 "그 좋은 걸 아직도 안 해보셨단 말씀이시오? 허허허!"라고 답했다. 


인사이트여장한 미소녀와 입 맞추는 사무라이 / 미야가와 잇쇼 作


신유한은 자신이 본 충격적인 일본의 '남창' 풍습을 '해유록'이란 기행문에 상세히 기록했다.


'해유록'에서 그는 "(일본의) 남창은 요망스럽고 아리따움이 여자보다도 곱다. 그 풍속이 음탕하고 이에 빠지는 것이 여자보다 배나 더하였다"라며 일본의 남창 문화를 묘사했다.


이어 "왕은 물론 귀족과 부자, 백성에 이르기까지 남창과 어울리지 않는 자가 없었고, 심지어 서로의 남창을 질투해 죽이는 자까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남자가 남자를 질투해 '살인'까지 저질렀다니, 유교 사회 선비였던 신유한에게 일본의 남창 문화가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인사이트사무라이의 시중을 들고 있는 여장 미소년 / 히시카와 모로노부 作


사실 '와카슈도(若衆道)' 불리는 일본의 남창 문화는 당시 흔한 일본의 성문화 중 하나였다. 


14세기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와카슈도'는 메이지유신 이후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20세기에 이르러서도 일본 곳곳에서 남창이 매춘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1946년에 발간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도 기록될 정도.


그만큼 일본에서 동성애 '와카슈도'는 일반적인 성문화의 하나였다. 


인사이트영화 '쌍화점' 스틸컷


개방적인 '동성애' 문화가 일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미소년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하나의 문화였다.


그리스의 경우, 유명 철학자였던 플라톤이 "번식이 불가능한 미소년과의 사랑이야말로 본능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교 문화가 뿌리 깊었던 조선에서 동성애는 음양의 이치를 벗어난 부도덕한 행위였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신유한이 일본의 '남창' 문화를 보고 '아연실색'한 것도 이 때문. 


남성끼리도 성행위를 즐기는 일본의 당대 성문화는 유학자 신유한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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