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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물류센터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지옥이었다"

연이은 사망사고와 관련, '원청' CJ대한통운의 책임있는 자세가 절실한 때이다.

인사이트SBS 8시 뉴스 


8월 한달간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만 2건 CJ대한통운은 "유감이다.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말뿐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벌써 2번째. 한 달 사이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만 2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한 사람은 복학을 앞두고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20대 청년이었고, 다른 이는 이제 막 택배일에 뛰어든 50대 노동자였다.


푹푹 찌는 폭염 속에서 웃통을 벗고 땀을 쏟아내던 청년은 전기가 흐르는 기계 밑으로 청소를 하러 들어갔다가 감전사고를 당했다.


제발 살아달라 간절히 바랐지만 열흘 만에 숨을 거뒀다. 가족 단톡방에는 "아들 잘하고 와"라는 엄마의 메시지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50대 노동자는 허리 한 번 제대로 펴기 힘든 택배차량 안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쓰러졌고 동료가 발견해 심폐소생술 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눈을 감았다.


이날은 그가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 출근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인은 부검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 이런 와중에 CJ대한통운 측은 "평소 지병이 있었다더라"고 인터뷰했다.


24일 간격으로 벌어진 이번 사고에서 우리가 눈 여겨봐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두 사람 모두 '일용직 노동자'라는 것이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원청-하청-재하청' 복잡하게 얽혀있는 계약 구조가 화를 불렀다 


CJ대한통운은 원청과 하청업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구조를 띤다. 본사는 노동력을 빨리 수급하기 위해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인력을 충당하고 있다.


감전사한 대학생 역시 CJ대한통운이 아닌 A하도급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다. 


물류센터만이 아니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과도 직접 계약하지 않는다.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이 대리점에서 자체적으로 택배기사를 수급하는 경우가 다수를 이룬다.


거의 다단계식 하청인 셈. 문제는 이렇게 수급된 노동자에 대한 안전 교육과 산재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일용직 노동자도 기본 1시간의 안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감전사 대학생'이 받은 교육은 단 5분밖에 되지 않았다.


대전고용노동청이 해당 물류센터의 특별감독을 실시한 결과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항도 수십 건 적발됐다.


본사가 하청업체에 모든 걸 떠넘기는 사이 현장은 노동자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천만한 곳으로 변하고 있었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문제만 생기면 '하청업체 탓'으로 돌리는 원청 


CJ대한통운을 비롯, 택배업계가 원청·재하청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 받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김태완 위원장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을 시켰으면 관리 책임을 져야 하지만 택배는 신흥사업이어서 법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 형태를 지속하다보니 관리 책임에 원청이 빠진다는 것. 


최근 일련의 사망사고에서도 CJ대한통운은 '도의적인 책임'만 운운할 뿐 법적 배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원청의 무책임한 자세는 올여름 벌어진 '택배대란' 사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짜 분류 노동을 두고 파업이 있을 당시 CJ대한통운은 대리점과 택배기사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본사는 간섭할 권한이 없다며 발을 뺐다.


본사의 개입이 곧 '월권'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해 원청도 '똑같이' 책임져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모든 책임을 원청이 지도록 하고 있다.


연 매출에 버금가는 벌금형은 물론 사안이 심각할 경우 책임자에게 징역형이 내려지기도 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도록 법적으로 원천차단하고, 원청이 스스로 현장 관리와 안전 문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원청이 하청과 똑같은 처벌을 받도록 하면서 산재사고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법적 보완과 별개로 택배업계는 현장에 만연한 다단계식 하청구조의 체질 개선을 고심해봐야 한다.


당장 하청을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안전' 문제라도 원청이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제2의, 제3의 '대학생 감전사'를 막을 수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죽은 자가 남기고 간 뼈아픈 경고 


어쩌면 한 달 새 벌어진 2번의 사망사고는 CJ대한통운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물류센터가 택배 노동자들에게 있어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지옥이 되지 않도록 원청으로서의 책임을 다해달라는, 죽은 자들이 남기고 간 뼈아픈 경고. 


'업계 1위' CJ대한통운은 노동자의 죽음이 서려있는 이 경고를 쉬이 넘겨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