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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상하차하다 죽은 알바생이 12시간 동안 먹은 건 '포도당 2알'과 '얼음물 1병'이 전부였다"

대전의 한 CJ대한통운 물류센터는 알바비를 벌려는 20대 청년들에게 지옥과 다름 없었다.

인사이트SBS 8시 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앞둔 평범한 20대 청년. 부모님께 손 벌리기가 죄송했던 그는 등록금도 마련하고 여행 경비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결심했다.


그가 향한 곳은 대전의 한 물류센터였다. 그곳에서 '지옥의 알바'라 불리는 택배 상·하차를 시작했다.


보통 오후 7시 30분부터 오전 8시까지 대략 12시간 가까이 일했다. 해가 지고도 35도를 웃도는 열대야 탓에 종종 웃통을 벗었다.


너무 많이 땀을 흘려 화장실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길고 고된 작업이 이어졌지만 그가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은 겨우 10분이었다.


12시간의 강노동에 지칠 때쯤 업체는 그의 손에 두 가지를 쥐여줬다. 차가운 얼음물, 그리고 포도당 알약 2알이었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마치 70~80년대, 인권이라고는 없었던 열악한 노동현장을 보는 듯하지만 이는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지난 6일 이곳 CJ대한통운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사인은 감전이었다. 당시 그는 웃통을 벗은 채로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 빗자루를 들고 들어갔고 그 순간 몸에 전류가 흐르면서 30초 동안 감전됐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열흘 만에 숨을 거뒀다. 갑자기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에 유가족들은 절망했다.


CJ대한통운의 하도급 업체인 해당 물류센터는 "안전 점검도 다 했는데 우리도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 처음"이라며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사측의 해명이 무색하게도 물류센터 곳곳엔 노동자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노컷뉴스에 따르면 해당 물류센터에는 근로자가 기계에 끼였을 때 바로 작동을 멈추도록 하는 비상정지 장치가 일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또 사고 위험이 높은 곳에 덮개와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난간 등이 있어야 하지만 이 또한 없었다.


비단 시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용직도 1시간은 필수로 안전 교육을 받아야하지만, 숨진 20대 청년은 5분 교육 받은 게 전부였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은 CBS '김현정과의 뉴스쇼'에서 "전기에 관한 안전 교육은 없었다. 직원들이 전류 흐르는 걸 알았을 텐데 차단기 안 내리고 청소를 시켰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증언했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에도 레일 3개당 대형 선풍기 하나가 전부.


심지어 너무 목이 말라 정수기에 물 좀 떠오겠다는 부탁하자 업체는 '레일에서 이탈하지 말라'며 이를 거절했다. 그곳은 물 한모금도 허락되지 않는 지옥과 다름 없었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20대 청년의 목숨은 스러졌지만 정작 이를 책임지겠다는 이는 없다. 도리어 일이 커질까 쉬쉬하는 모양새다.


사고 직후 물류센터 측이 노동자들에게 이번 사고를 외부에 이야기하지도 말고,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았다고 말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제2의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입단속부터 시작한 이들의 행보가 아쉽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원청' CJ대한통운은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유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도의적'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사실상 법적인 책임엔 발을 빼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유가족의 심정을 헤아리겠다는 '애도'만으로는 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가혹하고 열악한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뼈저리게 반성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업 환경을 개선과 안전 점검을 하청업체에 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관리감독하며 체계를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택배 업계 1위'의 품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