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6일)은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범 총에 맞아 서거한 날입니다"
"오늘(26일)은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범 총에 맞아 서거한 날입니다"
2018.06.26 11:12

인사이트'혼란 속의 한국, 호랑이를 잃다', 칼 마이던스 / LIFE 1949년 7월호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한가로운 오후, 서울 한복판에 네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69년 전 오늘인 1949년 6월 26일은 '우리 민족의 큰 어른'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범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한 날이다.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 선생은 스무 살이 된 1896년 2월 우연히 주막에서 일본군 쓰치다 죠스케를 마주친다.


쓰치다를 1895년 벌어진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주범이라 생각한 김구 선생은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 왜놈을 죽였노라'는 글을 남기며 쓰치다를 살해한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살인죄를 물어 김구 선생은 1897년 7월 사형 선고를 받고 8월 26일 형 집행이 확정됐다. 


사형 직전, 고종이 특사로 집행 정지령을 내리면서 김구 선생은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출옥한 뒤 1908년 비밀결사 조직 신민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1911년 일제에 의해 신민회가 발각되면서 김구 선생 역시 압송됐고,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이곳에서 선생은 자신의 호를 직접 짓는다. 흰 백(白)과 무릇 범(凡)을 딴 '백범(白凡)'.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땅에 와서 살다간 숱한 보통 사람처럼, 평범한 민초로 살다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인사이트영화 '대장 김창수'


선생이 생각하는 민초는 애국심을 가진, 주권의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일제 탄압이 더욱 흉포해지자 김구 선생은 상해로 거처를 옮겨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본격적인 항거에 나섰다.


1932년 1월 이봉창 의사의 일왕 저격과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폭탄 의거를 지휘했고, 이를 통해 한민족의 독립 열망을 일깨웠다.


김구 선생은 오직 조선의 힘으로 일본에서 독립하기 위해 애썼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하자 김구 선생은 스스로 나라를 되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비통함을 느꼈다.


인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 선생은 친일파 숙청을 주장했으며,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한반도의 '민족 통일'을 염원했다.


그러던 1949년 6월 26일, 손님으로 가장한 암살범을 맞닥뜨린다. 


육군 장교 안두희가 김구 선생을 향해 네 차례 방아쇠를 당기고, 선생은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깊은 슬픔이 나라 전체를 뒤덮었다. 해방 이후 거행된 우리나라 최초 국민장에는 100만여 시민이 몰려 마지막까지 김구 선생과 함께했다.


인사이트안두희 생전 모습 / KBS 1TV


암살범 안두희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석 달 만에 15년 형으로 감형되더니 2계급 특진을 하고 6.25 전쟁 때 포병 장교로 복귀한다.


제대 후에도 군납 공장 등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어들였다. 이에 안두희가 최고 배후 세력의 지시를 받아 김구 선생을 암살했다는 의혹이 짙어지기도 했다. 


늙어서도 호의호식하던 안두희는 1996년 10월 자택에서 한 시민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사망했다. 김구 선생을 암살한 죗값을 받는 데까지 47년이었다. 


한편 세계적인 시사 잡지 라이프(LIFE)는 1949년 당시 김구 선생의 서거를 보도하며 "혼란 속의 한국, 호랑이를 잃다"고 평했다.

조산사가 '8개월' 차 임신부의 '납작배'를 만지자 6주 후 벌어진 놀라운 변화
입력 2018.12.18 14:20


[인사이트] 김민주 기자 = 설마 하는 마음에 산부인과를 찾은 18살 소녀는 무려 37주 만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지난 17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더선 등 다수의 외신은 37주 동안 임신 사실을 모르다가 의사의 진단 이후 6주 만에 아기를 출산한 10대 소녀의 사연을 전했다.


사연에 따르면 영국 에식스주에 사는 18살 소녀 사프론 헤퍼(Saffron Heffer)는 최근 부쩍 자신의 몸에 이상함을 느꼈다.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는 것은 물론 항상 졸음이 쏟아졌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


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엄청나게 짜증을 느껴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사프론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예민해진 것으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사프론의 엄마가 딸의 몸에서 특이한 변화를 발견했다. 사프론의 배에 임신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색소침착이 나타났던 것.


대개 아이를 가진 임신부들은 임신 기간 중 배,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에 색소침착이 생긴다.


딸의 몸에서 이같은 임신 징후를 발견한 엄마는 즉시 임신테스트를 제안했고, 사프론은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프론의 임신 테스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임신 징후가 없던 사프론이 진짜 임신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놀라 급히 찾은 병원에서도 사프론은 임신 진단을 받았다.


당시 사프론은 임신 37주 차에 접어들었으며 태아도 건강한 상태였다.


다만 의사는 태아의 자세가 비스듬해 만삭이었던 사프론의 배가 많이 부르지 않은 것이라 설명했다.




이에 의사와 조산사는 산모의 배를 마사지해 태아의 자세를 바르게 고쳐줬다. 이후 6주 동안 사프론의 배는 급격히 불러와 평범한 만삭의 임신부 모습을 보이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6월, 사프론은 몸무게 약 3.6kg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현재는 선물처럼 찾아온 아들 오스카(Oscar)와 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프론.


사프론은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분명 몸무게가 줄기까지 했는데, 임신이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며 "병원에서 조산사에게 마사지를 받은 뒤, 점점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너무 신기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오스카와 함께 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기쁨의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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