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지하철서 '성희롱'당하는 여성을 도와주지 않았다
아무도 지하철서 '성희롱'당하는 여성을 도와주지 않았다
2018.03.23 19:28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유없이 폭언을 들어야 했던 여성은 한 용기 있는 시민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난 20일 저녁 A씨는 서대문역에서 5호선을 타고 퇴근길에 올랐다.


그런데 같은 칸에 타고있던 한 남성이 별안간 A씨를 향해 "야"라고 시비를 걸었다.


이 남성은 술에 잔뜩 취해 있어서 A씨는 대꾸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A씨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남성은 다짜고짜 "넌 애미애비도 없냐, 나 무시하냐"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니같은 X들 때문에 미투가 나오는거다", "니 다리를 찢어서 XX 해야한다" "친구들 불러 너 하나 그렇게 못할 것 같냐"는 등 성희롱과 폭언이 섞인 말을 쏟아냈다.


무섭고 기분이 나빴던 A씨는 자리로 피했으나 남성의 폭언은 그칠 줄 몰랐다.


원래 바로 다음 정거장인 광화문역에서 내릴 계획이었던 A씨는 이같은 남성의 행동을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출입문에 보이는 지하철 신고 번호로 신고를 했고 이는 빠르게 접수돼 몇 정거장 후 직원이 열차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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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상황을 설명하자 남성은 태도를 바꿔 "내가 뭘 했느냐"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난감해진 A씨는 근처에 앉아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증인이 되어줄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대부분 이어폰을 낀 채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A씨가 당황스러움을 느끼려던 찰나 한 젊은 여성이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이 여성은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폭언을 하는 남성으로부터 A씨를 지켰다.


미안해하는 A씨에게 거듭 괜찮다는 말을 한 이 여성은 지구대에서 진술서를 쓰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인사이트A씨가 올린 수사 안내문 / 온라인 커뮤니티


사건을 맡은 수사관은 "증인분의 정확한 증언으로 이 남성은 혐의가 인정될 것이다"고 A씨를 안심시켰다.


A씨는 얼마 전 이 사연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며 용기를 내 자신을 도와준 여성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일에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반성하게 됐다"며 "앞으로 남자든 여자든 이런 피해를 겪는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어 "잘못이 계속되지 않도록 나서주신 여성분께 이 감사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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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21일 A씨가 게시한 글에 당시 도움을 준 여성으로 보이는 누리꾼이 댓글을 달았다. 


그는 "마땅히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상은 바라지 않는다"며 "이런 일이 조작같고 현실성따위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실제상황이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에게 폭언을 들어야 했던 A씨를 스스럼없이 발벗고 나선 이 여성은 사건이 끝난 후에도 A씨를 안심시키며 격려했다.


불미스러운 일을 마주하고도 망설이는 사람들 속에서 용기를 낸 이 여성의 행동은 점점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해가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있다.


최민주 기자 minjoo@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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