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년 전, 겁 없이 '행주산성' 진격했다가 짱돌 맞고 도망친 왜군들
425년 전, 겁 없이 '행주산성' 진격했다가 짱돌 맞고 도망친 왜군들
2018.03.14 17:50

인사이트행주대첩 기념관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조선 선조 26년 2월 12일(음력 기준) 새벽 6시.


약 3만 명의 왜군이 행주산성을 공격했다. 당시 행주산성을 지키던 조선군은 고작 2,800명.


조선군은 1:10이라는 수적 열세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런데 12시간이 지나고 땅거미가 질 무렵, 왜군은 혼비백산하며 꽁무니를 내뺐다. 조선군의 대승이었다.


역사는 이 전투를 '행주대첩(幸州大捷)'이라고 기록했다.


행주대첩은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불린다.


인사이트KBS '임진왜란 1592'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전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왜군을 무찌르고 행주산성을 지킬 수 있었던 비책은 무엇이었을까.


행주대첩 발발 당시 일본군은 조선의 한양 탈환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행주산성을 공격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이곳이 왜군에 함락되면 한강 하류는 물론 한양까지 완전히 빼앗길 위협에 처한 상황이었다.


조선군은 배수진을 치고 왜군에 맞섰고, 왜군과의 최후 격전지로 여기며 전투에 임했다.


전투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됐다. 왜군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1군을 필두로 총 4군으로 나뉘어 행주산성에 맹공을 퍼부었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조선군은 당시 신무기이자 최종 병기였던 화차(火車)와 신기전(神機箭) 등으로 맞섰다.


왜군은 수적 우세를 믿고 성벽으로 달려들었지만 조선군은 신무기로 적들을 제거하며 필사적으로 성벽을 지켰다.


온종일 전투는 끊이지 않았다. 막바지에 달하자 조선군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화살이 다 떨어진 것이다.


이때 부녀자들이 나섰다. 덧치마에 돌을 운반하고 왜군에게 돌멩이를 던지며 결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당시 전투를 총지휘했던 권율 장군의 뛰어난 지도력, 판단력 등도 빛을 발했다.


인사이트YouTube 'NATV 국회방송'


결국 왜군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고 퇴각했다.


일본군의 사망자는 1만 5,000명, 부상자는 9,000명이었다. 조선군의 사상자는 단 130명.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성공적인 수성전(守城戰)으로 기록됐다. 서기 1593년 3월 14일이었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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