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18살 꽃다운 나이 일제에 붙잡힌 유관순 열사가 당한 고문과 마지막 유언
18살 꽃다운 나이 일제에 붙잡힌 유관순 열사가 당한 고문과 마지막 유언

인사이트연합뉴스


[인사이트] 진민경 기자 = "대한 독립 만세!"


99년 전 오늘인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민 5천여 명의 '조국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슷한 시각 탑골공원에서 150m 떨어진 인사동 태화관에서는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이 모인 가운데 한용운이 일어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삼창했다.


우리에게 잘 열려진 3.1 운동의 시작이다. 탑골공원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독립시위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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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4월 1일 18살이던 소녀 유관순 열사는 아우내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다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본 헌병에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일제는 유관순 열사의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해 펜치로 손톱과 강제로 뽑는 것도 모자라 성(性) 고문까지 서슴지 않았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잔혹한 고문에도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던 처음 그 마음을 꺾지 않았다.


갖은 고문으로 핍박받던 유관순 열사는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 3.1 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옥중 만세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인사이트서대문형무소 수감 당시 유관순 열사 수형자 기록표 / 연합뉴스


그러다가 끝내 그해 9월 28일 오후 8시 20분 유관순 열사는 19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유관순 열사는 옥중에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하며 흔들림 없는 투쟁 의지를 보여줬다.


눈을 감기 직전 유관순 열사는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고 절규에 찬 목소리로 조국 독립을 바랐다.


인사이트유관순 열차 추모각 / 연합뉴스


유관순 열사는 순국 후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일제가 군용기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지난 2015년 9월에 세워진 추모비만이 덩그러니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18년 3월 18일 17세 나이에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하고, 4월 1일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하면서 세상을 바로 보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힘을 길렀다.


인사이트독립문 앞 3·1운동 재현하는 시민들 / 연합뉴스


진민경 기자 minkyeong@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