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 서울
  • 8 8℃ 인천
  • 16 16℃ 춘천
  • 15 15℃ 강릉
  • 16 16℃ 수원
  • 13 13℃ 청주
  • 13 13℃ 대전
  • 11 11℃ 전주
  • 13 13℃ 광주
  • 16 16℃ 대구
  • 18 18℃ 부산
  • 16 16℃ 제주

오늘(4일)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이순덕 할머니가 남긴 업적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던 이순덕 할머니의 숭고한 발자취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인사이트마리몬드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17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 이순덕 할머니가 오늘(4일) 별세했다.


이런 가운데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던 이순덕 할머니의 숭고한 발자취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1918년 전북 이리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좋은 옷과 쌀밥을 준다는 말에 속아 1934년 일본군에 끌려갔다.


이후 해방과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자유를 되찾았지만 그동안 당한 고초로 인해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인사이트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죽기 전에 일본이 사죄와 배상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소망한 이 할머니는 그 길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다.


이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위안부의 인권 회복과 진상 규명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피해 상황을 증언했다.


그 결과 1998년 이 할머니는 일본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으로부터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게 30만엔씩 배상해야 한다는 의미있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해당 판결은 법적 투쟁을 시작한지 5년 5년만에 이뤄낸 성과이자 일본 사법부가 일본 정부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인정한 유일한 사례가 됐다. 


인사이트왼쪽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이순덕, 이용수 할머니


오직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결기로 일본 정부와 맞서온 이 할머니는 2013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면서 노인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 누워서도 이 할머니는 "이대로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다"며 "빨리 나아야 또 일본 건너가서 싸움 한 번 야무지게 할 텐데"라는 말을 여러 번 읊조렸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로 지급된 위로금 역시 '굴욕적'이라며 받지 않았다.


그런 이 할머니를 보고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도 지지 않는 동백을 닮았다'며 '동백꽃 할머니'라 불렀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꼿꼿이 견뎌오던 이 할머니는 100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남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38명이 됐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14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