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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가 갖고 있던 천경자 '미인도'의 풀리지 않는 의문

황규정 기자 2016.12.23 15:08

인사이트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 설명하는 검찰 / 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진품'입니다"


지난 19일 검찰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지으며 지난 25년간 이어져왔던 위작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검찰은 "미술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고 동원 가능한 한 거의 모든 감정방법을 동원해 진실 규명에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던 위작 스캔들은 천 화백 유족들이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서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는 미인도 위작 논란, 그 시발점은 대체 어디였을까.


◆ "누가 김재규에게 '가짜'를 선물했겠는가"


인사이트연합뉴스


1979년 대구 보안사령부인 '태백공사'에서 근무했던 오 모씨는 천 화백으로부터 직접 그림을 구입해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게 선물한다.


같은 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혐의로 김재규가 사형당한 후 그의 재산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보내졌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김재규가 소장하고 있던 '미인도'를 위작이라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내가 그린 것이 아니어서 안 그렸다고 하는데, 왜 내 것이 아니냐고 하시면...."


인사이트(좌) 미인도, (우) 故 천경자 화백의 모습 / 연합뉴스


1991년 4월, 천경자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만든 팸플릿에 실린 '미인도'를 보고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주장하면서 위작 스캔들의 서막이 열린다.


당시 천 화백은 "작품은 산고를 겪은 뒤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듯이 발표되는데, 어떻게 내 자식을 몰라보겠느냐"며 미인도가 '가짜'라 밝혔다.


갑작스러운 위작 논란에 미술관 측은 소장 경위가 확실할뿐더러 이미 유명 평론가에 의해 '진품'으로 감정됐다는 이유로 천 화백의 주장을 묵살했다.


이에 화가 난 천 화백은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 "애초에 정밀감정이 없었다?"…2015년 천 화백 사망으로 재점화된 '위작' 논란


인사이트천경자 화백 추도식에 묵념하는 조문객 / 연합뉴스


지난해 천 화백이 미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인도' 위작 스캔들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천 화백의 유족 측이 '미인도'를 두고 재감정을 요구한 것이다.


앞서 2002년 현대미술관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정밀 감정을 토대로 미인도가 '진품'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미인도를 감정했다는 기록이 없었으며 이에 처음부터 제대로 된 감정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에 현대미술관이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못하면서 사건은 더욱 혼란에 빠진다.


◆ 프랑스 감정단 "가짜" vs 한국 검찰 "진짜"


인사이트'미인도'를 감정한 뤼미에르 감정단의 모습 / 연합뉴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밝혀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랑스 미술감정단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해외기관에 감정을 맡기자는 유족들의 뜻대로 '미인도'는 다시 이들의 손에 맡겨졌다.


이후 2016년 11월 뤼미에르 감정단은 "미인도와 천 화백의 다른 작품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진품일 확률이 0.0002%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즉, 가짜라는 것.


하지만 검찰은 "프랑스 감정단이 제시한 분석은 의미가 없고, 감정 시 고려해야 하는 다른 요소들이 배제돼 있어 문제가 있다"며 이를 정면 반박했다.


이어 작가에 대한 전반적 지식과 미술사적 분석자료, 재료, 소장 경위 등을 종합하여 미인도는 '진품'이라 못 박았다.


당연히 유족 측과 뤼미에르 감정단은 반발했고 지금도 '진위' 여부는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 희대의 위작 스캔들이 대한민국에 남긴 것


인사이트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5년간 지지부진 이어져 오고 있는 미인도 스캔들이 대한민국 미술계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단이 근본적으로 미술 작품들을 데이터베이스화 시키지 않는 시스템에 있다고 지적한다.


'미술'이라는 장르 특성상 단순한 사료 분석만으로 진품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더불어 미술관 측의 주장처럼 작가의 기억에 의존하여 모든 작품을 구별해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시기, 재료, 작풍 등 세세한 정보를 모두 기입한 자료를 차곡차곡 쌓아둬야 쓸데없는 소모전을 피할 수 있다.


뫼비우스 띠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인도 스캔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뼈아픈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황규정 기자 kyoojeong@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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