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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재미있는' 조선의 역사 9

권길여 기자 2016.06.09 10:06

김홍도 '빨래터' 

 

[인사이트] 권길여 기자 = 학창시절에는 '역사'를 무조건 외워야 하는 지루한 과목이라고 생각했었다.

 

오직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역사'는 생각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아 몰랐지만, 어떻게 보면 TV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조선의 역사 9가지를 소개한다.

 

참고로 아래 소개할 내용은 추수밭 출판사에서 나온 책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발췌해 가져왔음을 밝혀 둔다.

 

1. 조선시대에는 5살 때부터 '수험생' 생활을 했다

 

MBC '일밤-아빠! 어디가?' 

 

조선시대 때의 '과거 시험'은 오늘날의 '수능'에 비할 바가 못됐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한 가문의 운명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이에 양반들은 아들이 5세 정도 되면 본격적으로 과거를 공부시켰다.

 

2. 궁궐 안에서 화장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 '광해' 스틸컷 

 

왕이나 왕족들에게 급한 볼일이 생기면 즉석에서 화장실이 만들어졌었기에, 이들은 따로 화장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궁에는 왕이나 왕족 외에도 궁녀, 내관, 병사 등 궁을 출입하는 대신들까지 3,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에 신하들은 냄새나는 화장실을 내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해 이용했다.

 

3. 일본으로 유학 갔던 김옥균이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한 말은 "똥을 개혁하자"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1880년대 초 일본의 선진문물을 배우러 갔던 김옥균은 한국으로 돌아와 "똥을 개혁하자"는 파격적인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김옥균은 "서울의 비위생적인 환경부터 개선한 다음에 개혁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당시 서울의 거리는 천지가 '똥밭'이었다고 전해진다.

 

겨울에는 냄새가 덜했지만,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코를 막고서야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4. 세계 최초의 방탄복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흥선대원군은 1886년 병인양요 때 서양 총의 위력을 실감하고 총에 맞아도 살 수 있는 '방탄복'을 제작 주문했다.

 

이에 신하들은 면포 13장을 겹친 면제배갑을 개발했다.

 

물론 불이 잘 붙는다는 것과 입고 있으면 더웠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5. 왕자의 친구는 공무원이었다

 

MBC '이산'


왕자들에게는 함께 어울려 놀고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왕자가 자연스레 사귄 친구는 아니며 어떤 기준에 의해 선발된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들은 '배동원'이라 불렸다. 배동원은 관원 대우를 받았고 어느 정도의 돈을 받았다.

 

6. 김씨는 원래 금씨였다

 

태조 이성계의 모습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이라는 의도된(?)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그때 '이씨가 금씨에게 진다'는 내용의 소문도 함께 돌기 시작했다.

 

이에 불안을 느꼈던 이성계는 금씨를 쓸때는 '금(金)'으로 쓰되 읽을 때는 '김(金)'으로 읽게 했다.

 

7. 조선시대에는 애 어린 할 것없이 담배를 태웠다

 

신윤복 '청금상련' 

 

조선시대는 골초 국가였다.

 

이는 많은 사료들에 기록되어 있다.

 

실제 19세기 순조 임금은 조선 백성들의 흡연 형태를 보며 "아이들이 젖만 떼고 나면 곧바로 담뱃대를 문다"고 개탄한 적이 있다고 한다.

 

8. 조선인들은 대식가였다

 

온라인커뮤니티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사실인 듯 싶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하루 먹을 양식을 한 끼(1,263ml)에 다 먹었다.

 

실제 당시 중국에 다녀온 실학자 홍대용은 우리나라 보다 작은 중국의 밥그릇을 '찻잔'으로 묘사했다.

 

일본에 다녀온 김세렴은 "왜인들은 한 끼에 쌀밥 두어 줌밖에 먹지 않더라"라고 발언했다.

 

9. 신문고를 잘못 치면 매질당했다

 

 

대부분 '신문고'를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민초들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고는 역모사건 고발이나, 살인, 친자 확인, 정실인지 첩인지 구분하는 것, 양민인지 천민인지 구분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에 다른 이유로 신문고를 울리면 매타작을 당하거나 벌을 받았다.

 

권길여 기자 gilyeo@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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