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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왕' 문화에서 볼 수 있는 '헬조선'

정은혜 기자 2017.01.11 19:30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인사이트] 정은혜 기자 = CES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정태영 부회장이 한미일 식당 문화를 비교하는 짧은 소감을 남겨 많은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7일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객은 왕'이라는 한국의 서비스 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글을 남겼다.


정 부회장은 "일본의 식당/가게는 유별나게 친절하고 깍듯하다. 그런데 손님이 지켜야 하는 룰도 똑같이 엄격하다"며 일본의 문화를 먼저 소개했다.


정 부회장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작은 라면집에서조차 손님이 생떼를 쓰거나 하면 단호하게 퇴출 당한다.


미국에서 느낀 소회도 짧게 남겼다. "미국은 손님에게 친근하고 자연스럽다. 손님도 자연스럽다"고 말이다.


"두 경우 다 균형이 잡힌 경우"라는 짧은 평가와 함께 한국의 서비스와 고객이 지켜야 할 룰 사이의 불균형에 대해 지적하기 시작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정 부회장은 "한국은 언제부턴가 '고객은 왕'이라며 친절과 서비스를 성립할 수 없는 지경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고객이 지켜야 할 룰은 언급이 없다보니 균형은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서비스의 파열음이 나온다"고 말하며 이같은 화두를 던졌다.


실제 한국 종업원들은 친절한 제스쳐를 취할 것을 과도하게 요구받고, 일부 몰지각한 고객들은 그런 종업원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례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너무 심한 손님이 많다보니 알바생들에게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옷을 입히거나, 손님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안내문을 붙이는 사장님들도 있다.


물론 그런 사장님보다는 "고객은 왕이니 무조건 친절하라"고 가르치거나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손님 앞에서도 종업원을 다그치거나 말한마디 못하고 고개를 조아리는 사장님이 더 많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고객은 왕'이라는 한국의 문화는 '돈을 주는 사람'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잘못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서비스와 재화를 거래하는 동등한 관계가 아닌, 재화를 주는 사람은 '갑'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을'이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식당에서 뿐 아니라 직장 내에서의 상하관계,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관계에서도 이같은 '서비스의 파열음'이 심하게 나타난다.


일부 '사용자'는 직원의 시간과 노동력의 일부를 거래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돈을 주는 순간 자신이 주인이 된 듯 느낀다.


대한민국 직장인 다수가 여가 없는 삶, 회사 상사의 개인적인 일까지 도맡으며 충성하는 삶을 사는 이유다.


또 일감을 주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게 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일을 준다'는 이유로 온갖 상상할 수 없는 갑질을 일삼는 데에도 이런 문화가 들어있다.


인사이트JTBC '송곳'


전후에 붕괴된 사회를 복구하고,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는 "잘 살아 보세"라는 주문이 마법처럼 자리잡았다. 


그렇게 "잘 살아 보세"라는 주문을 외치며 만든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는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을 식당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리고 사회 도처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다시 돌아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식당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미국과 일본의 식당 문화는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거래의 현장'이고 한국의 식당 문화는 돈을 주는 사람을 가장 높은 신분인 왕으로 치부하는 '주종 관계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문화에는 상대성이 있다 하더라도 '고객은 왕'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할 수 있는 한국의 문화는 확실히 전근대적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멍든 대한민국을 고칠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은 '고객은 왕이 아니다. 고객은 고객이다'라는 생각에서부터 나올지 모른다.


정은혜 기자 eunhy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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