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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로 독재자 아빠 '영웅'만든 딸 박근혜

심정우 기자 2016.12.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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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심정우 기자 =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정치의 길로 뛰어들기 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89년 MBC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에 대해 '구국의 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어 "부모에 대해 잘못된 것은 하나라도 바로잡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27년 전 이미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역사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확실히 결정하고 아버지에 대한 '정의'를 바로잡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정치인이 된 뒤에도 박 대통령의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토론에서 박 대통령은 "5.16을 쿠데타로 인정하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판단은 국민과 역사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지만, 국민과 역사가 아닌 자신의 '사사로운 인연'에 따라 역사를 고칠 마음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한 것을 보면 그 '속내'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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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공개한 뒤 많은 이들은 박씨 일가의 '진심'을 확인했다. 


곧바로 교과서 많은 부분에서 논란이 일어났고, "결국 제 입맛대로 역사를 바꾼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건국절 논란'으로 말이 많았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꿔 기술됐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 설명한다.


1948년 이전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그 시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은 '독립운동'이나 '친일'이라는 말로 규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일본명 다카키 마사오를 사용했던 박정희는 친일파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계속됐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교과서의 친일미화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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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사교과서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박정희 '유신체제'의 병폐보다는 성과만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교과서는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대기업의 성장, 과학 기술 진흥 정책 등 박정희 정권의 업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반면 "국민의 기본권들이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의해 제한됐다"는 짧은 말로 중세 암흑기와 같았던 유신체제의 그늘을 '성의없이' 서술하고 있다.


'박정희'라는 역사적 인물은 폭력으로 대통령직을 꿰차고 오랜 시간 독재 정치를 펼쳤다. 그 사실은 당시 민주화를 외치며 최루탄에 맞서고 곤봉의 아픔을 이겨낸 이들이 그 자식에게 전해준 생생한 경험담이고 '역사'다.


비록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위안을 삼을지 몰라도 독재 정권의 탄압으로 생긴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사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다. 박정희 때문에 경제 성장을 했다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많기 때문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그 시대에 생긴 짙은 상처와 아픔을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역사교과서는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주면서 동시에 과거의 실수를 객관적으로 경험하도록 구성돼야 한다. '독재'는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경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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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사례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국가는 터키,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 단 3개국 뿐이다.


이 또한 출판 시장이 너무 작거나 종교적 이유 등을 이유로 국정 교과서를 채택하는 경우다.


과거를 보더라도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독일 나치시절 히틀러나 해방 전 일본제국이 실행한 역사교육 뿐이다.


교과서를 세뇌의 장치로 이용하는 북한이나,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표기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본을 손가락질하면서 대체 왜 박근혜 정부는 그들과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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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사교과서에 '아름답게' 서술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라는 이유가 클 것이다. 아버지를 '독재자'로 묘사했던 일부 역사교과서에 대해 딸인 박 대통령은 오랫동안 앙심을 품었던 게 아닐까.


에드워드 카는 그가 저술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고 평가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라는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옳고 그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고, 하나의 사건을 두고 대립 관계에 있는 인식들이 충돌한다.


의견의 대립은 다른 의미로 대화이며, 치열한 토론과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적절한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국정 역사교과서를 이용한 것이라면, 아버지를 향한 그 지독한 사랑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독(毒)'이 될 수밖에 없다.


왜곡된 역사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어린 학생들이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고 다양한 방향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없도록 유도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단 하나'의 역사교과서가 아닌 다양한 역사 인식을 배울 수 있는 '역사교과서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심정우 기자 jungwoo@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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