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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50년 전 만든 '악법'으로 촛불집회 막는 경찰

문지영 기자 2016.12.08 13:20

인사이트연합뉴스


[인사이트] 문지영 기자 =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는 광화문 '세종대왕 상'에서 처음 시작됐다. 


1, 2차 집회 때 시민들은 청와대로부터 무려 '1.8km' 떨어진 이곳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목 놓아 외쳤다.


3차 집회는 청와대와 조금 더 가까워진 내자동 교차로까지 800m, 4차는 400m, 5차는 200m까지 접근이 허용됐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지면서 시민들은 한 발 한 발 청와대 가까이 다가갔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 땐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00m 앞에서 행진도 했다. 의미 있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세월호 참사 후 '2년 8개월'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 숱한 집회를 열었지만 늘 청와대로의 행진을 제지당했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선두에서 오열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이렇게 청와대에 가까워지기까지는 주최 측과 경찰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있었다.


집회에 앞서 주최 측이 집회를 신고하면 경찰이 그 장소를 '금지' 혹은 '제한'했고 법원이 조금 더 '허용'해주는 행태가 반복됐다.


인사이트연합뉴스


모두 알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국민의 당연한 권리에 대한 권력 기관의 허가는 원래 필요가 없다. 


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르면 국민 누구나 사전 신고만으로 시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 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는 명분은 '집시법 제12조'다. 이 조항에 따르면 시위로 인해 교통 소란이 발생할 수 있는 전국 주요 도로에서는 관할 경찰서장이 집회를 금지해도 된다.


'주요 도로'에는 청와대 근처 뿐 아니라 촛불 집회 때 100만 시민이 모이는 세종대로, 종로, 대학로, 광화문 사거리 등이 속한다.


경찰이 '교통 소통'을 명분으로 내세우면 서울시내 주요 도로에서 열리는 집회와 행진을 모두 막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 차벽에 막혀 광화문 광장엔 가보지도 못 한 백남기 농민은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그에 비하면 이번 6차 촛불 집회 때 시위대가 청와대 100m 앞까지 간 것을 두고 기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인사이트연합뉴스


결코 그렇지 않다.


집시법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군부 정권이 만든 '악법'이기 때문이다. 이 법은 군사정변 2년 후, 국회가 아닌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비상조직의 손에서 탄생했다.


50여 년 전 독재정권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려 만든 악법이 지금까지, 그것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며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경찰 마음대로 집회를 금지하는 법 자체가 없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및 부통령 공관 부지를 제외하면 집회를 열 수 있다. 지난 7월 영국 '브렉시트' 반대자들은 아예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시위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6주 만에 겨우 청와대 100m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지만 오히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백악관 앞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친 '아이러니'는 그래서 연출됐다.


인사이트지난 3일 열린 제6차 촛불집회 당시 불꺼진 청와대 모습


이는 단순히 청와대 '100m' 앞을 '10m'로 당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경찰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명분인 집시법 규정을 폐지해야만 국민의 말할 자유가 보장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집시법이 없다면 도심에 소란이 발생하고 청와대와 국회 업무가 마비된다고 우려한다. 단지 '우려' 때문에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이미 우리 국민들은 6주 연속 단 한 명의 연행자 없는 평화 집회를 열었다. 한국의 시위 문화는 이제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할 만큼 성숙해졌다.


박근혜 탄핵이 이뤄진 뒤에는 박정희 독재권력의 '악령'인 집시법에 대한 존폐 여부를 논의해야 할 명분은 이제 충분하다.


오는 10일이면 벌써 일곱 번째 촛불이 모인다. 경찰은 또 100m 이내를 통과하는 집회를 금지 통고했다.


평소 직접적인 발언권을 갖지 못 했던 100만 시민은 이번에도 경찰의 '허용선' 밖에서나마 청와대까지 들리도록 목이 터져라 '박근혜 퇴진'을 외칠 것이다.


박 대통령이 퇴진하지 않고 '집시법'이 존재하는 한, 토요일 밤마다 대통령은 불 끄고 청와대에 숨을 것이며 허공에 울리는 국민들의 '한풀이'는 계속될 것이다.


문지영 기자 moonjii@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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