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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학 협박'에도 10대 학생들이 촛불집회에 나서는 진짜 이유

황규정 기자 2016.11.17 20:45

인사이트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노인들의 본거지라 불리는 종로 '탑골 공원' 앞에 교복을 입은 수십 명의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시시콜콜한 수다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잠시, 아이들은 사뭇 비장한 눈빛으로 '박근혜 하야'라고 적힌 붉은 피켓을 들어 올렸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기서 뭐하냐'는 노인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야, 퇴진, 탄핵, 비선 실세, 부정부패, 최순실 게이트, 시국선언...'


그저 낯설기만 한 이 단어들은 아이들의 입을 타고 종로 탑골공원을 지나 광화문 광장 그리고 청와대의 담벼락까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인사이트국민들을 좌절하게 만든 최순실의 딸 정유라. (좌) SBS / (우) 연합뉴스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최순실 게이트'는 10대 청소년들마저 '허탈감'과 '공허함' 속으로 밀어 넣었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이대에 부정입학했다는 의혹이 그 시발점이었다.


우리나라의 10대들은 1년 365일을 쪼개가며 밤샘 공부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시험을 망칠 때면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탓으로 돌려 자책하기 바쁘다.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인내해야만 자신의 원하는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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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정씨는 달랐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겨우 17일 등교하고도 무사히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기적'이 유독 그녀에게만은 일어났다.


'우리 엄마 최순실이야'라는 한마디면 0.11이었던 학점이 3.30으로 올라가고, 실력 없이도 금메달을 척척 목에 걸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거'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언과 달리 '온 우주'는 오직 '가진 자'들에게만 온정을 베풀고 있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정씨의 망언이 현실이 된 지금,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느껴야 할 배신감은 얼마나 컸을까.


사실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로 살아왔다.


교과서를 통해 "국가의 주인은 국민", "10대는 나라의 희망"이라 배웠지만 학생들은 단 한 번도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린 적이 없었다.


집회에 참여하려던 아이들은 '퇴학 조치'로 협박당했고,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발언을 내뱉으면 곧장 '벌점'이 매겨졌다.


하지만 이렇게 암울하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10대만이 가질 수 있는 재치있고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인사이트(좌) Instagram '_sihyunnnnn_'/ (우) Instagram 'oyeah_min'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 선 아이들은 10대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순수함으로 직접 자신들이 꿈꾸는 나라를 외치는 중이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웃기다며 'ㅋㅋㅋ'이 적힌 마스크를 끼고 나온 아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한 초등학생은 "내가 이럴려고 초등학교에 가서 말하기를 배웠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서 잠이 안온다"며 박 대통령을 재치있게 풍자해 시민들을 폭소케 했다.


용돈을 탈탈 털어 쓰레기봉투와 핫팩을 장만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경찰에게 욕하는 아저씨들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10대 청소년들.


쾌활하고 평화로웠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던 그날의 집회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했고, 그들도 이 나라의 '주인'임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언제나 그랬듯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현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있었다.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군은 4.19 혁명의 불을 지폈고, 광주대동고 3학년 전영진 군의 죽음은 수많은 중고교 학생들을 광주 5.18 민주화 운동으로 끌어 들였다.


역사가 증명했듯 10대 청소년들은 순간의 '분노'가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2016년 판 '중고생 혁명'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도울 것이라는 '사탕발림'이 아니라 그저 '함께하자'는 따뜻한 손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황규정 기자 kyoojeong@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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