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나라 팔아넘긴 이완용이 죽기 직전 친아들에게 남긴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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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


지난 1929년 2월 12일. 일본에 조국을 팔아넘긴 을사오적 이완용이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폐렴. 일제의 주구(走狗)로 활동하며 권력을 얻고 호의호식하던 이완용이었다.


독립투사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완용은 단지 '폐렴'의 병세가 악화돼 눈을 감았다.


죽기 전 이완용은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친미파가 되거라. 그렇게 이완용은 주구로서의 역할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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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완용은 처음부터 친일파가 아니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독립협회 첫 위원장이 바로 이완용이었다. 독립문 건립에 앞장섰던 핵심인물 중 하나였다.


독립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완용의 행보는 매국보다는 개혁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친미파'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평전에서 "독립하면 나라가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요. 조선 사람들은 미국같이 되기를 바라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며 일본이 위세를 떨치자 이완용은 곧장 '친일파'로 노선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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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완용의 행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고종을 협박해 을사늑약을 체결하며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다.


지난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리고 1910년 8월 22일, 서울 남산 북쪽 기슭의 조선통감관저에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당시 현장에는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이완용이 있었다. 이완용은 당당히 한일병합조약에 서명했고, 그렇게 나라를 팔아넘겼다.


이완용은 자신의 일대기인 '일당기사'에서 "황제 폐하의 소명을 받들기 위해 데라우치 통감과 회견하여 일한병합조약에 상호조인하고 위임장을 궁에 환납하다"라고 적었다.


그의 어투에서는 조금의 두려움, 억울함,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국이 망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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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이완용은 조국을 넘긴 대가로 엄청난 부와 명예, 권력을 얻었고 사망한 날인 1929년 2월 12일까지 떳떳하게 살았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이완용은 앞으로의 국제 정세를 점치며 아들에게 '친미파'를 권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두고 이완용을 "기회주의자이며 박쥐 같은 인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완용은 숨질 당시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 후 한 마디를 덧붙였다.


"힘없는 다리를 부축해달라고 남에게 부탁한 것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은 일이라고 매도당해야 하는가"


'친일파' 이완용은 92년 전 오늘 죽는날까지 편안하게 살았다92년 전 오늘(12일)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이 편안하게 숨을 거둔 날이다.


나라 팔아넘긴 '친일파' 이완용 재산 최초 확인…"여의도의 7.7배"조선의 국권을 일본에게 넘겨주는데 앞장섰던 '매국노' 이완용의 전체 재산 규모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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