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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름 댔다가 6.25 전쟁 끌려가 5년 군 복무한 일본인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군으로도 복무하게 된 한 일본인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인사이트1992년 6월 25일 기사 / 경향신문


[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 전쟁에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마무리되기까지 총 25개국에서 150만명이 참전했다.


다양한 국가들이 병력을 지원한 가운데 제2차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일본은 공식적으로 파병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미국의 주도 하에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극비리에 바다속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부대를 파병했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끌려가 참전했다가 이후 다시 한국군으로 징집당하는 기구한 인생행로를 걸었던 한 일본인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본 미야기(宮城)현 출신의 후지이 히데토(藤井秀人·92년당시 62세·가명).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한강을 건너는 북한군' / 국가기록원


이 사연은 지난 1992년 6월 24일 일본 산케이 신문에 보도되었으며 25일 경향신문에 실렸다.


당시 산케이 신문은 후지이가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쟁 당시의 상황을 수기로 써 보내면서 참전 사실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후지이는 1945년 해방 당시 15살로 어머니와 3명의 형제들과 함께 춘천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발발했고 한국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게 된 그해 8월, 전차를 타고 종로를 지나다 인민군에 징집되어 입대한다. 


수백명의 다른 청년들과 평안남도 원리의 '인민군 제5야영훈련소'에 끌려간 후지이는 이름을 묻는 말에 한국식 이름인 '박념인'이라 대답했고 이로 인해 인민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거제 포로수용소'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수송병으로 일하던 그는 영국보병부대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수용소에서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밝혔으나 사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제도에서 3년 가까이 포로생활을 하던 후지이는 1953년 6월 반공포로석방으로 가까스로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웠던 전후(戰後) 한국에서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같은해 가을,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부산역으로 가던 중 병역 기피자 단속반에 붙잡히고 말았고 이번에는 육군 제2보충대에 편입됐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샌프란시스코 한국전쟁 기념관


1년 가까이 국군으로 복무하던 후지이는 이듬해 1954년 11월 애국반공청년지원병에 대한 특별휴가를 받게된다. 


휴가를 받아 서울로 향한 후 이를 기회로 한국 외무부에 귀국 신청을 한다.


또다시 1년이 지난 1955년 10월에야 귀국 신청이 허가됐다는 통지를 받고 제대를 할 수 있었다.


1956년 2월 5일. 그는 마침내 오사카 항을 통해 일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일본이 패전한 지 10년 6개월만이었다.


한국인 행세로 인민군에 끌려가 6.25 전쟁을 겪고 국군으로까지 복무했던 후지이. 20여년이 흐른 지금 자세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6.25전쟁서 폭파 명령 거부하고 '덕수궁' 지켜낸 미국 장교오늘(25일) 6.25 전쟁 제67주년을 맞아 한국 전쟁 당시 우리나라 덕수궁을 지켜내기 위해 힘썼던 미국 장교의 노력이 재조명되고 있다.


'킹스맨' 출연한 마이클 케인은 '6.25전쟁' 참전 영웅이다영화 '킹스맨'에 출연해 국내팬들에게도 친숙한 배우 마이클 케인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민주 기자 minjo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