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내시가 '성생활'을 즐겼다는 5가지 증거
성 불구자였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내시의 실제 성생활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사이트] 백다니엘 기자 = 흔히 '내시'라고 하면 거세로 인해 성 기능을 완전히 잃은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선시대 내시의 삶, 특히 그들의 성생활은 현대인들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내시들도 아내와 자녀를 두고 결혼생활을 했고, 아이를 가질 순 없었지만 양자를 들여 대를 잇기도 했다.
특히 음경과 고환을 모두 잘라내는 중국의 환관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내시들은 음경을 남겨둔 채 고환만 제거했기 때문에 성관계가 가능했다.
성생활이 가능했던 조선시대 내시들의 삶은 어땠을지 아래 내용을 통해 알아보자.
1. 정자를 생산할 수는 없어도 발기는 가능했다
사춘기 이전에 거세를 할 경우 발기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하지만 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진 후 사춘기 무렵에 거세를 하면 발기의 가능성이 남게 된다.
물론 발기가 된다 해도 보통의 남성에 비해 강직도와 지속시간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발기가 된다는 것은 삽입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다만 삽입을 해도 정자가 없기 때문에 임신을 시킬 수는 없었다.
요즘에 이뤄지는 정관수술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2. 조선시대에는 발기가 가능한 내시의 스캔들이 더러 있었다
태조 2년 6월 19일 어느 날, 뜬금없이 내시 이만이 죽임을 다하고 세자빈 유씨가 친정으로 쫓겨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임금이 내시를 죽이고 세자빈을 쫓아냈던 것은 세자빈과 내시의 육체관계에 대한 일을 덮으려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연산군 시절 환관들의 '깜짝 음경 검사'가 있었는데 이 같은 지시는 내시의 간통 사건 때문이었다.
3.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성생활을 즐겼다
정상적인 성생활이 힘들었던 내시들은 다른 방법으로 이를 대신하기도 했다.
부인과 음경 모양의 '도구'를 이용해 성생활을 가졌다는 설도 있다.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인 인간이기에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4. 사정을 못하는 괴로움 때문에 아내를 깨물기도 했다
원로 향토사학자 김동복(77) 씨는 내시들이 성생활 도중 사정을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괴로움으로 인해 내시들은 아내의 목덜미와 어깨를 깨물어 아내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일부 내시들은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천을 동여매고 관계를 지속하기도 했다.
내시의 아내들 대부분 6개월을 못 견디고 '야반도주'하는 일이 빈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5. 내시도 성병에 걸렸다
조선 말기에는 내시들이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성병에 감염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환은 거세된 상태지만 음경이 남아있기 때문에 성생활로 인한 성병에 감염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백다니엘 기자 danie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