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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어려운 '헬조선' 떠나요"…일본으로 향하는 취준생들

국내 취업이 힘들다고 판단한 한국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은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서울시내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28살 안모씨는 얼마 전 일본취업 문제를 두고 부모님과 한바탕 실랑이를 했습니다.


"국내에 좋은 회사도 많은데 굳이 일본으로 가겠다는 이유가 뭐냐, 조금만 더 노력해보면 안되겠느냐"는 부모님에게 안씨는 "백(100)수 안되려면 어쩔 수 없어요"라고 답했습니다.


*백(100)수 : 생계유지와 취업 준비를 함께 하면서 취업에 100번을 도전해도 도무지 되지 않는 것을 의미.


부모님은 취업 준비 생활을 2년 가까이 한 아들이 갑자기 일본어 학원을 등록하고, 일본으로 간다니 불안합니다. 하지만 안 씨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올해 국내 대기업 3곳에서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합격 통지를 받지 못했어요. 일본 교환학생 경험이 있고, 장래성을 따져봤을 때 더 늦게 전에 일본에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한국은 취업난, 일본은 인력난


인사이트연합뉴스


일본 취업으로 발길을 돌리는 건 안 씨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은 지난해 약 4만8천명. 이는 2008년(약 2만명)과 비교해 두 배 넘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취업난과 일본의 인력난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실제로 한국 청년들의 취업 길은 꽉 막혔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청년실업률은 8.6%로 동월 기준으로 1999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이에 탈한국을 꿈꾸는 청년들도 많죠.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이유로 '국내 취업난이 너무 심각해서'라는 답변이 47%로 가장 많았습니다.


반면, 일본은 일손 확보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일본의 구직자가 한 명인 상황에서 기업 등에서 필요로 하는 구인자는 1.52명으로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에 일본은 정보기술(IT) 분야 등 기술력을 갖춘 한국 젊은이들을 적극 흡수한다는 계획이죠.


인사이트연합뉴스


일본 기업의 인력부족은 인구감소가 주된 원인입니다.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 은퇴와 1990년대 중후반 시작된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세가 겹쳤죠. 또 대기업 중심 양적 완화를 펼친 '아베노믹스'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증가했습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특수로 기업들의 투자와 인력확대도 영향을 미쳤죠.


청년들의 일본 취업 만족도는 높은 편입니다.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가 최근 3년 이내 일본에 취업해 근무하고 있는 143명의 한국 취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설문응답자의 57.8%가 현재 직장에 만족한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으로 향한 3인이 말하는 일본 기업 문화


인사이트연합뉴스


실제로 일본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취업 계기와 장단점, 기업문화, 취업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보기 위해 청년 3명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백모(27·남)씨, 요코하마 거주, B물류회사 퇴사 이후 타 기업 취업 확정


사회 초년생 때 한국 기업에 취업했는데 월급이 적고 일도 잘 안풀렸어요. 일본 교환학생 시절 호텔에서 인턴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바로 일본으로 향했죠. 일본인 아내와 연애하고 있던 시기라 큰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었어요.


일본 기업은 흔히 말하는 스펙이 별로 필요 없어요. 신입사원은 회사 재원을 투자해서 키워내야 할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더 중요하죠. 일본 대학생들은 졸업 전에 취업을 확정 짓는 편이고, 문과 취업도 수월해요.


업무 시간에는 '일'만 하는 분위기예요. 개인 휴대폰으로 메신저를 하거나 뉴스검색을 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죠. 단적으로 편의점에서도 알바생이 앉아 있거나 핸드폰 하는 건 허용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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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점은 일본은 여전히 아날로그 분위기가 남아있다는 거예요. 취업 준비를 할 때 자필로 이력서, 자소서를 쓰고 우편으로 보냈어요. 회사가 여는 취업 설명회를 꼭 가야만 지원 기회를 얻는 경우도 있죠.


월급은 보통 20만엔(한화 약 200만원) 전후예요. 여기에 잔업수당, 주택수당, 가족수당과 교통비가 붙는 식이죠. 따로 상여금도 있고요. 대기업은 보통 이것보다 조금 더 받죠. 생각보다 적다는 느낌이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아요.


최근 들어 일본 취업이 쉽다는 보도를 많이 봤는데, 좀 왜곡됐다고 생각해요. 일단 일본어는 필수이고, 일본기업은 스펙 대신에 기업분석이나 자기분석을 심도있게 요구해서 결코 쉽다고 볼 수는 없어요. 현지에 와서 홀로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다만 언어가 되고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추천해요. 요즘같은 시대에 한국에서만 취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유럽도 보면 주변국으로 취직하고 그러잖아요.


#문모(29)씨, 고베 거주, C 상사회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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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가는 게 낫겠어"...한국에서 일본인 아내와 신혼생활을 6개월 정도 했어요. 당시 월급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해서 무턱대고 일본행을 결심했죠. 일본에 이주하고 1년 1개월 되던 지난 5월에 경력직으로 입사했어요.


현재는 상사회사에서 품질업무를 맡고 있어요. 일본 회사에서 가장 놀랐던 게 명함에 핸드폰 번호가 없다는 점이었어요. 그만큼 퇴근 후에 개인시간이 철저히 보장되죠.


사내문화도 차이가 있어요. 한국은 출근 시간보다 30분이나 한 시간 먼저 오는 걸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일본은 출근 시간 1분 전에 도착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다만 개인주의가 강한 만큼 뭐든지 자신이 책임져야 해요. 다들 자신의 일이 아니면 관심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죠. 함께 출퇴근 하거나 밥을 먹는 일도 거의 없어요. 사생활을 공유하거나 농담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죠.


급여는 한국보다 높은 편이에요. 약 1.5배 높여서 취직했어요.


한국에서는 매일밤 9시 퇴근 또는 주말 출근으로 개인 시간이 없었어요. 여기는 주말이 보장되고, 잔업을 하게 될 경우 잔업수당비가 나와요. 모든 조건이 만족스러워서 굳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허모(25)씨, 삿포로 거주, 여행회사 재직


인사이트연합뉴스


일본 관련 학과를 졸업했는데, 일본에서 한번쯤 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3월부터 일본 여행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만약 친구가 막연한 동경에 일본 취업을 희망한다면 말리고 싶어요. 일본인의 개인주의 등으로 외로움을 느낄 수 있어요. 타지에 와서 가족이나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아요.


일본 회사는 매뉴얼 이외의 요구나 터치가 거의 없어요. 웬만하면 묻지도 않고 건드리지 않아요. 하지만 매뉴얼에 맞춰 돌아가는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 수 있어요.


급여수준은 회사마다 달라요. 개인적으로 중소기업 기준으로만 보면 한국과 비교해 월세, 차량, 교통비 등이 지원돼 복지시스템이 잘 돼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에서 5년 정도 경력을 쌓고, 이후에는 같은 분야인 한국 여행관련 회사에 경력직으로 들어갈 생각이에요.


◇일본취업 열풍이 주는 시사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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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급여가 상대적으로 많고, 일과 사생활이 분리돼 있다는 것이 장점이며 개인주의가 단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취업을 선택하는 이유로 '미래 비전이 있어서'(24.8%)가 가장 많았고, 단점으로는 '외국생활의 외로움'(21.8%)을 꼽았습니다.


일본 취업과 관련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유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일본의 해외 인재 유입 노력으로 한국인 우수 인재 일본 유출도 증가하고 있어 적절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이 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한광희 한신대 교수(한일경상학회 회장)는 "절대적인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필기시험과 스펙위주의 채용, 장시간 근로 등이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을 등지고 일본으로 향하는 청년들. 이들이 국내에서도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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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탈출합니다"…한국 국적 포기자 '22만명' 넘었다지난 10년간 대한민국 국적 포기자가 22만 3,611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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