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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박정희 독재 정권에 맞선 22살 청년 전태일이 분신해 숨진 날입니다"

47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 외치며 자신을 불태워 희생한 22살 청년 전태일의 세상을 떠난 날이다.

인사이트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근로기준법을 준수해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47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은 22살의 청년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시키지 말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절규하며 청계천 거리에서 분신해 사망한 날이다.


당시 지인들의 기억 속에 전태일은 돈이 없어 점심을 굶는 어린 동료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곤 자신은 버스 대신 늘 뛰어다녔던 착한 청년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그는 하루 18시간여를 일하면서도 잠을 줄여 2시간씩 매일 공부를 하며 대학 진학을 꿈꿨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그러나 '노동법'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입시 공부가 아닌, 노동법을 공부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봉제 노동자의 40%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굶주림을 이기려고 하루 100원 내외의 급료를 받으며 16시간 일을 했다.


전태일은 자신의 노동조건이 아닌 이들을 위해 노동 및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그가 소망한 것은 소박했다. 하루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2시간으로, 일요일마다 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는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의 작은 바람을 당시 박정희 정부는 번번이 거절하며 되려 '사회주의 조직' 활동이라고 낙인을 찍어 방해까지 했다.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고 일기장에 적었을 만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래서 아무도 아니었던 22살 전태일이었다.


그럼에도 "절망은 없다"며 희망을 버릴 수 없었던 전태일은 한줄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직접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절절한 편지까지 보냈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그러나 끝까지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전태일은 죽음을 통해 이를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청계천 앞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을 그었다. 


그는 그렇게 불꽃에 휩싸였고, 22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배가 고프다.."였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죽을 때까지 허기를 채우지 못했던 젊은 청년의 죽음 이후 47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한쪽,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편에서는 박정희를 여전히 국가의 원수로 추존하며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 외친다.


이러한 모든 광경들을, 청계천에 세워진 전태일 기념 동상은 오늘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4m짜리 '박정희 동상' 세워진다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질 예정이다.


황효정 기자 hyojung@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