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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증거 7가지

세종대왕의 통치 철학은 애민 정신(愛民 精神)이었으며, 나라를 이끄는 정책 하나하나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인사이트KBS 1TV '역사저널 그날'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지금까지 한반도를 통치했던 수많은 왕 중에서 가장 백성들을 사랑했던 지도자는 바로 '세종대왕'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을 신격화하기에 급급했던 여느 왕들과는 달리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아끼고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세종대왕의 통치 철학은 애민 정신(愛民 精神)이었으며, 나라를 이끄는 정책 하나하나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여기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했다는 증거들을 모아봤다.


세종대왕의 집권 이후 500여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세종대왕 같은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1. 한글 창제


인사이트문화재청


가장 위대한 업적이자 애민 정신이 오롯이 깃들어 있는 한글.


세종대왕은 당시 지배계급들이 한자를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을 자신들만의 특권과 권위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반들은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지식이 깊어지고 함께 뜻을 나누며 힘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달랐다.


백성들이 '무지' 때문에 억압받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생각을 쉽게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 반포했다.


2. 출산 휴가제 도입


세종대왕은 관노비들에게 출산 휴가를 제공했다.


만삭의 노비들이 출산 직전까지 일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세종대왕은 출산 전 30일, 출산 후 100일의 출산 휴가를 명했다.


또한 남성 노비에게도 30일의 출산 휴가를 제공해 아내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3. 농사직설 편찬


인사이트SBS '뿌리깊은 나무'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는 농사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조선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서적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고유의 농업 관련 지식을 담은 책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세종대왕은 정초와 변효문 등에게 명을 내려 전국 농부들의 경험담을 모아 각 지역에 맞는 농사 방법을 상세히 담은 '농사직설'을 편찬하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격루, 측우기, 칠정산을 제작해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며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4. 아동 및 노인 복지 정책


90세가 넘은 노비에게는 장수의 의미로 쌀 약 288kg을 제공하도록 명했다.


또한 노인들을 위해서 베푸는 잔치인 '양로연'에는 신분에 관계없이 80세 이상의 노인들은 모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세종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정책도 펼쳤다. 의료 기관인 '제생원'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입양을 돕도록 명했다.


5. 장애인 복지 정책


인사이트연합뉴스


세종대왕은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크게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시각장애인 중 신분이 천민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 채용하도록 명했다.


또한 장애인 단체에 노비와 쌀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장애인들의 직업훈련이 크게 활성화될 수 있었다.


6. 왕가의 재산 축소


연이은 흉년으로 곳곳에서 백성들의 곡소리가 들리자 세종대왕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수양대군을 포함한 모든 대군들이 소유한 토지를 대폭 줄였고, 이 토지를 저렴한 값에 백성들에게 빌려주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장려했다.


7. 국민투표 실시


인사이트SBS '뿌리깊은 나무'


현재의 선거나 투표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당시에는 직접 민심을 확인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세종대왕은 토지법 제정을 앞두고 지역별로 관리를 파견해 약 5개월 동안 백성들을 상대로 투표를 실시했다.


토지법은 백성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니만큼 백성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려는 세종대왕의 애민 정책이었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