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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가 인턴의 '뺨'을 때릴 수밖에 없었던 충격적인 사연

한시가 급한 응급 환자 앞에서 수혈을 망설이던 인턴. 의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인턴의 뺨을 때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환자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수십 발의 탄환이 그의 배와 가슴을 뚫고 온몸의 장기에 박혀 있었다.


탄환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양의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응급실로 실려 온 이 환자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도저히 이 환자를 살릴 수 없을 것 같아 구급차에 태우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혹시 몰라 병원에 준비돼 있던 수혈 가능한 피는 모조리 함께 실었다.


대학병원으로 가는 길, 뒷자리에 앉은 인턴에게 지시했다.


"10분마다 환자의 혈압, 맥박을 체크하고 혈액이 부족해지면 새로운 수혈액으로 교체하라"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그동안 나는 정신없이 다른 곳에 연락했다. 대학병원에 전화해 환자의 상태를 설명, 집도를 부탁할 의사를 구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환자 보호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피가 안 들어가도 괜찮은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지? 뒤를 돌아본 나는 충격적인 장면과 마주했다. 인턴이 환자의 피가 모자란 상태인데도 수혈액을 교체하지 않는 것이다.


"뭐해! 빨리 혈액 교체하지 않고!!!"


다급해져 언성이 높아졌다. 재빨리 환자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턴은 계속 혈액이 아닌 수액만 바꾸고 있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너무 당황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여성 인턴을 옆으로 밀쳐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혈액팩을 교체하고 대학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환자의 곁을 지켰다.


다행히도 대학병원 측에서는 모든 수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환자를 바로 치료할 수 있었다. 환자의 생명에도 지장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참한 환자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후배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형... 그 친구 '여호와의 증인' 신도예요"


머리가 아득해졌다. 위급한 환자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인턴의 얼굴이 떠올랐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환자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던 환자 보호자 얼굴이 겹쳤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의 뺨에 손을 댔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어떤 말로도, 어떤 상황으로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인턴의 수첩에 적힌 문구 하나를 보게 됐다.


NO BLOOD. NO TRANSFUSION


위 이야기는 지난 2011년 박경철 의사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 실린 내용이다.


해당 작품은 박경철 의사가 직접 보고 들은 62편의 에피소드를 1, 2권에 걸쳐 엮은 에세이다. 즉, 위 이야기도 실제 사례 중 하나라는 뜻이다.


작품 발간 당시에도 세간에 큰 충격을 안긴 사례지만, 최근 여호와의 증인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뒤 대체복무의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다시 한번 조명되고 있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병역 거부 이외에도 '수혈 거부'도 종교적 신념이자 교리로 여기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그렇다면 왜? 어떤 이유에서 수혈을 거부할까.


여호와의 증인 측의 레위기 17:10~14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피를 멀리하라, 피째 먹지 말라, 피를 먹지 말라"


이를 입으로 피를 먹는 것이나 바늘을 통해 사람의 몸속으로 피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금한다고 신도들이 해석한 것이다.


종교적 믿음에 폭력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다만 과연 그것이 정녕 생명을 위한 길인지, 수혈을 거부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그들의 종교가 원하는 행동인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