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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부터 유부녀와 닥치는 대로 '간통'한 조선의 왕자

태종의 첫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이었던 양녕대군은 공부를 게을리한 것은 물론 수많은 여자와 스캔들을 일으켜 폐세자가 됐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조선의 수많은 왕자 중 가장 문란하기로 꼽히는 인물 중 하나가 조선의 3대 왕 태종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이다. 


그는 태종이 가장 사랑하는 자식 중 하나였으나, 그 기세를 등에 업고 온갖 '섹스 스캔들'을 일으켰다. 


'왕자의 난'으로 동생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이 첫째 양녕대군을 대신해 셋째 충녕대군을 다음 왕으로 삼았다는 것은 그만큼 양녕대군의 행실이 바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 태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양녕대군의 '난봉꾼' 기질은 그가 17세였을 때부터 나타났다. 


인사이트KBS1 '대왕 세종'


양녕대군이 17세가 되던 1410년 명나라 사신이 조선을 찾아 큰 연회가 열였다. 이 자리에 조선의 세자 신분으로 참석했던 양녕대군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기생 봉지련에게 한눈에 반했다.


이미 부인이 있었던 양녕대군이었지만, 봉지련에 반한 그는 궁궐에까지 그녀를 불러 스캔들을 일으켰다. 


아버지 태종은 이를 막아보려 애썼지만, 양녕대군이 이에 화를 내며 단식 투쟁을 이어가자 태종은 아들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 


양녕대군에 앞서 3명의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낸 태종이 또다시 아들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컸던 탓이다.


그러나 태종이 이렇게 쉽게 아들의 잘못을 넘기자 양녕대군의 행실은 더욱 나빠졌다. 


인사이트KBS1 '역사저널 그날'


이후 양녕대군은 자신의 삼촌이자 조선의 2대 왕이었던 정종의 첩 초궁장과 스캔들을 일으키더니, 그다음에는 매형의 첩 칠점생과 관계를 맺었다. 


큰일은 이 다음에 일어났다. 1417년 장안에서 뛰어난 미색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여인 '어리'가 있었다. 


그녀는 기생이 아닌 당대의 대신 사대부 곽선의 첩이었다. 그러나 이는 양녕대군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고싶다'는 양녕대군의 부름을 어리가 거절하자, 그는 사람을 시켜 어리를 납치해 성폭행한 후 궁으로 데려와 동거까지 했다. 


급기야 어리는 남편이 아닌 양녕대군의 자식을 임신하기에 이른다. 


인사이트KBS1 '역사저널 그날'


인사이트채널A '역사 다시 보기 천일야史'


일이 이렇게 되자 태종은 더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양녕대군을 궐 밖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양녕대군은 반성할 기미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 태종에게 "전하는 첩도 많으면서 내가 여인과 노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까"라며 대들었다. 


이후에도 양녕대군은 끊임없이 문란한 성관계를 이어가다 결국에는 폐세자가 되었다. 그를 대신해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새로운 세자로 책봉되었다. 


새로 책봉된 세자가 바로 충녕대군, 나아가 조선의 4대왕이 된 '세종대왕'이다. 


만약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지 않고 왕이 되었더라면, 우리가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는 세종대왕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사이트KBS1 '대왕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