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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매국노' 이완용이 일제에 나라를 통째로 팔아넘긴 날입니다"

이완용은 오늘(22일) 일제의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체결했다.

인사이트이완용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는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이 문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8년 전 오늘(1910년 8월 22일) '매국노' 이완용이 나라를 일제에 통째로 팔아넘긴 날 작성된 문구다.


이 문구는 '한일 병합 조약' 혹은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에 포함돼 있다.


'한일 병합 조약'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초로 국권을 상실했다. 우리의 황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됐고, 백성들은 졸지에 나라 잃은 신세가 됐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경술년(1910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다"라는 의미로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부른다. 국권피탈(國權被奪)이라고도 한다


인사이트국권피탈을 일으킨 '한일 병합 조약 조인서' / 한국학중앙연구원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은 한일합방, 한일합병, 한일병합 등의 용어를 쓴다. 이는 모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이날의 역사는 우리에게는 치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사실 기쁨이었다. '매국노' 이완용에게는 말이다.


1910년 당시 대한제국의 내각 총리대신이던 '친일파' 이완용은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회의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다.


을사늑약 이후 급격하게 기울던 대한제국은 이완용이 좋아했던 이 국권피탈로 인해 완전히 몰락했다.


그리고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일제에 의해 치욕을 겪었다. 노예도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질게 당했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국권피탈은 '독립운동'을 키우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일부 지식인과 관료들은 국권피탈을 반대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4만 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독립운동을 격화시켰다고는 하지만 '국치'는 국치다. 그런데 이 '경술국치'를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달력에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고,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는 탓이다. 구태여 창피한 이 날을 땅 밑에서 꺼내지 말자는 뜻일 게다.


과거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이 역사를 잊으면 우리는 재생할 수 없다. 다시 반복될 가능성만 있을 뿐.


인사이트tvN '어쩌다 어른'


또한, 오늘(22일)은 조약 체결일이고 다가오는 29일이 발효일이라는 것도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아무리 '생선초밥', '라멘', '타코야끼', '오꼬노미야끼' 등이 인기를 얻고, 오사카·후쿠오카 여행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고 해도 '경술국치'에 대해서는 알아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직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다. 할머니들의 아픔은 '경술국치'로 인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8년인 지금도 '한반도기'에 독도를 그려 넣는 게 논란이 되는 이 시대. '매국노' 이완용이 나라를 통째로 넘겨버린 오늘을 기억하고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