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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전 오늘,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그 상징으로 당시 일왕이었던 히로히토(裕仁)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의 패망과 항복을 전 국민에게 알리는 의식이 진행됐다.

인사이트위키백과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아마 일본인에게 '그날'을 물어보면 한참을 말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서두르지 말자. 그날의 그 순간을 기억하는 일본인에게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오래되고 빛바랜 사진 앨범을 열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앨범을 열면 '지지직'거리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한 남성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일본인들은 그 목소리가 무척 낯설었지만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주 '높으신' 분의 목소리라는 사실.


목소리는 차분했다. 조금은 더운 숨이 섞였지만,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메마른 그 목소리는 일본 전역에 울려 퍼졌다.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고자 충량한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인사이트위키백과


때는 73년 전 오늘(15일), 1945년 8월 15일 낮 12시였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그 상징으로 당시 일왕이었던 히로히토(裕仁)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의 패망과 항복을 전 국민에게 알리는 의식이 진행됐다.


내용은 뻔했다. 일왕이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것으로, 이 방송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빛(光)을 되찾게(復) 됐다.


일본 전역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일본 국민들은 일왕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최초로 일왕의 목소리가 일본 열도에 울려 퍼졌는데, 그것이 '항복 선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통곡을 금치 못했을 터.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 영, 중, 소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하였다"


"세계의 대세 역시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또한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해 무고한 백성들을 거듭 살상했으며, 그 참상이 미치는 바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다"


(중략)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의 해방에 협력한 여러 맹방에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들은 이날 방송을 '옥음방송(玉音放送)'이라고 부른다. 임금을 높여 부르는 옥(玉)에서 비롯돼, '위대한 일왕의 목소리'라는 뜻을 담았다.


인사이트A급 전범 도조 히데키 / gettyimagesKorea


그런데 그 내용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날 일왕의 항복 선언에서 '위대함'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알게 된다.


사실 일왕은 항복 선언 방송에서 '항복'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종전'이라고 했다.


그 속에 숨겨진 진의를 파헤쳐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해 항복하는 것이 아닌, 더이상의 살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종전하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이같은 풀이에 힘을 실어주는 단서는 많다. 일왕은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일본의 '국체 보전'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국체 보전, 즉 일본의 천황제를 지켜달라는 뜻이다. A급 중에서도 최고 A급 전범으로 꼽히는 일왕, 그를 유지하는 체제인 천황제를 존속시켜달라는 집단이 과연 얼마나 깊은 반성을 하고 있었을까.


또한 일왕의 항복 선언 방송이 전파를 타기 전후로, 일본 방송국 측은 기미가요 반주를 송출했다.


욱일기와 함께 대표적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꼽히는 기미가요를 항복 선언 전후에 송출했다는 사실은, 끝까지 전쟁에서의 패배와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같은 해 9월 2일, 일본 대표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외무대신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2차세계대전은 완전 종결됐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우리는 이같은 과정을 거쳐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패배를 인정했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본은 어디까지나 '종전'을 선언했을 뿐.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73년이 흘렀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일본의 사과를 들은 적이 없다.


YouTube 'New York Daily News'